훌리건(Hooligan)이 변화하고 있다. 빈민층과 실업자들이 축구를 매개로 울분을 터뜨리는 사회적 부작용 정도로 인식되던 훌리건이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중산층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심지어는 인종주의라는 공통분모를 매개로 극우 정치세력과의 연대까지 모색하며 조직화를 시도하고 있다.
남미는 물론 아시아에서까지 자생적 훌리건이 생겨나는 등 이제 훌리거니즘(Hooliganism)은 전세계적 사회 문제로 불거지는 추세다.
◈ 개념과 이념적 배경
훌리건은 흔히 ‘축구 경기와 관련해 난동을 부리는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훌리건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에서조차 아직 ‘축구 훌리거니즘’의 법적인 정의는 없는 상태다.
훌리건은 구조적 단일성이나 구성원의 뚜렷한 구분이 없어 일반 팬이나 서포터(응원단)와도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훌리건 폭력의 배경에 축구 특유의 성격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흔히 전쟁과 비교되는 축구의 오버래핑, 오프사이드 등 각종 작전이나 규칙은 전쟁의 기습작전, 함정전략 등과 비슷해 인간의 폭력적 본능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또 각종 스포츠 중 가장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어 핵무기 공포로 섣불리 전쟁을 치를 수 없는 현대 국가간의 대리전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ㆍ일전이 그렇고 스페인리그의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각각 카탈로냐 민족과 스페인 민족의 자존심을 대변한다.
여기에 다른 스포츠와 달리 키, 체중 등 특별한 신체 조건이 중요시되지 않는 점도 현대의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에서 신분상승의 대리만족을 준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훌리건의 종주국격인 영국에서는 섬나라 민족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외국인 공포증(Xenophobism)이 외국인과 타민족에 대한 우월감과 혐오감을 폭력으로 표출하는 훌리건을 부추긴다고 본다.
자신들을 우수 민족으로 확신하면서 남의 기물 파괴를 승자의 권리로 생각하고 범죄라는 인식조차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혐오 감정은 유색인종과 이슬람교에 대한 거침없는 공격 성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조직화 경향에 대해서는 “장교와 사병으로 분화해 사병이 상부의 명령에 따라 전투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네덜란드 라이덴대학 연구팀 보고)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 세력확장과 정치세력화
최근 수년 사이 일어난 훌리건 계층의 변화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영국의 노동자 등 하류 계층을 중심으로 했던 훌리건이 1990년대 들어 전문직 등 고급 인력을 포함한 중산층으로 재편돼 최근에는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유로 2000’ 대회 당시 폭력을 일으켰던 1만 5,000여 리버풀 청년들은 벨기에 브뤼셀까지 날아와 대낮부터 술을 마셨다는 데서 그들의 경제력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훌리건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중인 BBC TV는 26일 방송분에서 점차 조직화하고 정치세력화하는 훌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탈리아 라치오 팀의 훌리건 그룹 ‘이리두시빌라’는 독자적인 생산ㆍ유통망까지 갖추고 경기장의 응원 도구 공급과 운영을 독점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인종주의적ㆍ극우 성향을 숨기지 않으면서 유명 선수들과의 만남을 반강제로 주관하며 날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들이 강변하는 극우 이념이 일반 팬들에게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며 지지 확보를 꾀하는 일부 극우 정치인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들어 축구 관련 총격사고로 벌써 5명이 사망, 한때 시즌이 중단되기도 했던 아르헨티나보카 주니어스의 팬클럽 ‘바라스 브라바스’의 훌리건 역시 막강한 지지를 바탕으로 디에고 마라도나 같은 슈퍼스타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 떠오르는 훌리건 강국 중국
축구를 국기(國技)로 내세우는 중국은 이미 훌리건 분야에선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다.
중국은 이미 1999년 서울에서 열린 시드니올림픽 최종예선에 5,000여 명의 ‘자요(加油)’ 응원단이 원정을 올 정도로 원정 능력도 입증한 바 있다.
2시간 응원을 위해 편도 1박 2일의 여정을 마다하지 않으며 암표를 사기 위해 월급보다 많은 액수를 기꺼이 쏟아 붓는 광기에 가까운 열정이 바탕이 된다.
2000년 7월 베이징(北京)의 한ㆍ중 친선경기에서 흥분한 중국팬들이 한국 유학생 응원단을 집단 폭행한 사건으로 중국의 훌리거니즘이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9년 상하이(上海) 한ㆍ중전에서 중국이 패하자 2,000여 관중이 경찰과 대치한 바 있으며 2000년 7월 시안(西岸)에서 열린 중국 리그에서는 홈팀이 원정팀과 비기자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은 홈 관중이 오물세례와 함께 버스유리창, 지나가는 승용차까지 무차별로 파괴해 결국 공안이 최루탄과 물대포로 진압한 전례가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훌리거니즘 역시 개방 정책에 따른 하층 계급의 사회적 불만이 주 요인으로 작용 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훌리건 어원·역사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훌리건의 유래는 갖가지 설이 분분하지만 몇가지 공통점은 찾아 볼 수 있다.
우선 19세기 말 영국 런던의 한 음악당에서 난동을 일으킨 아일랜드의 훌리건(Hooligan) 집안에서 유래됐다는 설과 1890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기에서 일어난 폭력 소동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다.
또 1898년 런던 거리를 몰려다니며 민가, 상점, 학교, 술집 등을 습격하고 술에 취해 아무에게나 싸움을 거는 등 폭력을 일삼던 청년 그룹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제지하는 경찰과도 당당히 맞섰던 이들의 행위가 런던 시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이 때부터 영국 신문들이 폭력배들에게 ‘훌리건’이란 명칭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기사에 ‘체포된 이들이 스스로 훌리건이라 불렀다’ ‘아일랜드 권투선수인 훌리 형제가 폭동의 리더였다’ 등 표현으로 보아 훌리건이란 표현이 당시 런던 불량그룹의 리더, 혹은 악당으로 유명했던 아일랜드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명칭에 비해 실제 축구 폭력의 역사는 훨씬 오래됐다. 1314년 에드워드 2세의 축구 금지령을 비롯해 영국에서 수세기에 걸쳐 거듭됐던 축구금지법은 각종 폭력사태가 이유 중 하나였다.
영국 사회문제연구센터(SIRC)에 따르면, 수백명의 선수들이 한꺼번에 경기에 뛰어들어 마을간 또는 원한 맺힌 사람들 간에 내기 또는 분쟁해결 방법으로 선호됐던 13세기 중세 축구가 축구 폭력의 기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19세기 근대축구 성립 이후, 1920년대에는 지역 간 경쟁심리로 응원단이 거리에서 칼과 쇠몽둥이를 들고 맞섰고 1930년대에는 가게 침입이나 선수 및 경찰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 TV 축구중계의 시작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보수당 정권의 사회복지 축소, 빈부격차 심화에 반발한 실업자와 빈민층이 축구장에서 그 울분을 폭발시켜 난동을 부리는 일이 잦아졌다.
1970년대에는 헤드헌터, 인터시티펌 등 악명 높은 폭력 집단들이 생겨나게 되고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훌리건이 사용됐다.
훌리건 난동은 1980년대 들어 더욱 격렬해져 조직적으로 상대 응원단을 공격하는 구스너, 수어사이드 스쿼드 같은 조직들까지 등장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훌리건 난동 주요 사건
▲ 1964. 5. 24(페루 리마) 올림픽 예선 아르헨티나-페루전에서 경기 종료 2분 전 페루가 넣은 골을 심판이 부인하자 홈 축구팬들이 난동. 318명 사망, 500여 명 부상
▲ 1969. 6. 8(엘살바도르) 엘살바도르-온두라스 월드컵 예선에서 원정 응원단이 판정시비 끝에 구타당하자 방화로 보복. 7월 양국간 전쟁으로 300여 명 사망
▲ 1985. 5. 29(벨기에 브뤼셀) 잉글랜드 리버풀-이탈리아 유벤투스 유럽챔피언스컵 결승전에서 영국 훌리건들이 이탈리아인 집단 폭행, 펜스 붕괴. 39명 사망, 250명 부상
▲ 1998. 6. 14(프랑스 마르세이유) 월드컵 대회에서 영국과 튀니지 양국 응원단 각 50여 명이 집단싸움. 34명 부상. 새벽까지 시내 상점 약탈
▲ 1998. 6. 21(프랑스 낭트) 월드컵 독일-유고전 전후 1,000여 명의 독일 응원단이 경찰과 충돌. 프랑스 경찰관 다니엘 니벨(44)이 훌리건의 쇠파이프에 맞아 혼수 상태
* 프랑스 월드컵 기간 중 매일 훌리건 난동 발생
▲ 2000. 6. 18(벨기에 샤를루아) 유로2000 잉글랜드-독일 경기에서 영국이 34년 만에 독일을 제압하자 영국 훌리건들이 시내에서 난동. 56명 부상
* 유로2000 기간 중 훌리건 965명 구속, 464명 국외 추방
▲ 2000. 7. 28(중국 베이징) 한ㆍ중 친선경기에서 중국이 1대 0으로 패하자 중국 관중들이 열렬히 응원하던 한국 유학생 2명을 집단 폭행. 250여 명의 한국 응원단에 돌멩이 던지고 태극기 찢음
▲ 2001. 5. 18(터키 이스탄불) 영국 아스날-터키 갈라타사라이 UEFA컵 결승에서 영국 훌리건이 4월 터키에서 영국팬 2명이 찔려 숨진 데 대한 보복으로 터키팬 공격. 7명 부상, 수십 명 구속
■유럽 각국 팬 성향 분석
▲ 영국
- 민족적ㆍ공격적 성향. 조직화돼 있어 언제든 훌리건화 가능
- 술 약물의 부정적효과 높음
▲ 독일
- 해외원정 적극 참여. 경기에 강한 반응
- 구동독 출신 중심으로 노골적 자극행위
▲ 프랑스
- 자신들만의 서포티즘 발전
- 소규모 비조직적 단체가 위험
▲ 이탈리아
- 외국에선 충돌않지만 시비걸면 즉각 대응
- 조직화 되지 않음
▲ 벨기에
- 타 훌리건 집단에 반격성향. 술 약물에 부정적효과 높음
▲ 네덜란드
- 음주 약물 부정적 측면
- 음주폭력, 무단입장 등 사소한 사건 자주 발생
▲ 스페인
- 비폭력적. 경기 결과에 중립적 반응
- 훌리건 성향 팬은 대표팀 따라다니지 않음
▲ 포르투갈
-경기 결과에 강한 반응(물건투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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