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김희완(金熙完)씨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당적을 많이 바꿨다. 김씨가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포함, 정치권 전반에 걸친 ‘최규선(崔圭善) 게이트’의 핵심 인물이 된 것도 여야를 넘나든 이같은 특이한 경력에서 비롯됐다.최씨와 어울리면서 로비와 이권 개입에 열을 올리게 된 것도 의원의 꿈이 계속 좌절되는 굴절의 이력과 연관이 있다. 그는 1985년 이민우(李敏雨) 신민당 총재 비서로 정계에 들어왔는데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의원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도 이 때부터다.
통일민주당 시절 김씨는 3당 합당 당시 당에 잔류, 1992년 14대 총선에서 서울 송파갑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96년 15대 총선에서는 국민회의로 당적을 바꿔 재도전했으나 또 실패했다. 조순(趙淳) 서울시장 때 정무부시장으로 들어가 98년 6월까지 행정경력을 쌓기도 했다.
정무부시장을 그만둔 뒤 1999년 6ㆍ3 재선거 때 국민회의 당적으로 서울 송파갑에 출마하려다 송파갑이 당시 공동 여당이었던 자민련 몫으로 돌아가자 자민련으로 당적을 또 바꿔 공천을 따냈다.
이 재선거에서 김씨는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와 맞붙어 패했다.
의원 꿈을 접지 못한 김씨는 2000년 16대 총선을 두 달 앞두고 당시 무소속 홍사덕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한때 한나라당이 최규선 게이트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소문이 나돈 것도 이런 정황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는 공천을 받지 못하자 같은 해 4월말 미련없이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정치적 재기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던 김씨는 2000년 6월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출마를 준비하던 권노갑(權魯甲) 전 고문의 참모로 들어갔다.
이때 이미 최규선씨가 권 전 고문의 측근 행세를 하고 있었고 김씨와 최씨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를 두고 물질적 기반이 필요했던 김씨와 여야를 넘나드는 안면이 필요했던 최씨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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