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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필을 쓰다 / 나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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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필을 쓰다 / 나는 특별하다

입력
2002.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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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은 무녀리야.”아버지는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무녀리’. 한 태에서 나온 여러 마리 새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것을 이르는 말.

말이나 행동이 모자란 듯 보이는 사람을 이르기도 하는 말.

아버지는 잔병치레가 많아 튼실하지 못했던 큰딸이 예쁘고 또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 딸을 앉혀 놓고 이름을 풀어주면서 아버지는 자랑스러워 하셨다.

“뜻 지(志), 비칠 영(映). 이것 봐라. 뜻이 비친다는 거야. 네 뜻이 가려지지도, 숨겨지지도 않고 비친다는 거야.”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첫 자식은 말할 수 없이 귀하단다. 어렵게 얻은 딸이 어렸을 적 바나나 하나도 다 못 먹을 정도로 입이 짧아서 그렇게 속이 상하셨단다.

처음 얻은 자식에게 붙여준 이름은 얼마나 큰 의미가 실린 것이었을까. 나는 내 이름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사한 이름을 갖고 있으니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의 힘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울고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반 배정표 앞에서 어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어떡하지, 어떡하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2반의 김지영과 5반의 김지영. 어느 것이 내 이름인지 알 수 없었다. 모두가 제 교실을 찾았지만 나는 한참을 복도에서 서성거려야 했다.

그때 나는 기막히게 놀랐던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근사하고 힘 있는 김지영이 또 한 사람 존재하다니.

나는 세상에서 나 말고 다른 김지영은 없는 줄 알았다. 꼬마들은 제가 올라선 언덕이 다른 사람이 선 것과 높이가 같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다. 나는 그냥 그런 꼬마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 뒤로도 나는 몇 번 더 바깥에서 서성거려야 했다.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서너 명의 ‘김지영’을 만났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같은 과에 재학 중인 김지영은 3명이었다. 한자까지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는 이미 이름이 갖는 신비로움 같은 건 바랠 대로 바랜 뒤였다.

자신의 이름은 불리는 것에 익숙하다. 자기 이름을 부를라 치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과 친구가 되기란 쉽지 않다.

나는 그 많은 김지영 중 어느 누구와도 친해지지 못했지만, 가끔씩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여덟 살 난 딸이 있다는 선배에게 어느날 딸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다. ‘김지영’이란다.

요즘도 그런 이름을 짓느냐고 했더니, “너는 왜 자기 이름을 ‘그런 것’으로 여기느냐”며 선배는 뜨악해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저 많은 김지영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김지영은 ‘그런 이름’일 수 없다는 것을.

그 선배가 딸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나의 부모님은 말할 수 없이 소중하고 안쓰러운 심정으로 무녀리 자식을 불렀다는 것을.

그러니까 나는 세상에서 하나 뿐인 특별한 김지영이다. 뭐든지 할 수 있는 김지영이다.

그래도 역시 김지영이라는 이름은 참 흔하긴 흔한가 보다. 우리 부서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선배가 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사이트의 ‘사람찾기’ 메뉴에서 재미삼아 ‘김지영’을 쳐 봤더니, 1,000명까지 보여주고는 “1,000명 이상은 보여주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그것도 서울 지역으로만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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