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2002 월드컵을 맞아 수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찾을 것이고 위성방송을 통해 우리의 모습이 지구촌 곳곳에 전달될 것이다.한강의 다리에는 화려한 조명이 비춰지기 시작했고, 택시마다 동시통역 시스템이 이미 작동되고 있다. 테러방지를 위한 조치도 완벽한 것 같고, 자원봉사자들도 만반의 준비를 끝낸 상황이라 한다.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이 공동 개최하는 만큼 보다 정성스럽게 외국 손님을 맞아 한국의 이미지를 새롭게 해야겠다.
화려한 꽃다발을 받으며 환한 얼굴로 입국하는 외국 관광객들과 불법체류 자진신고를 위해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어두운 모습이 겹쳐오는 것은 어쩐 일인가.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이라는 면에서 월드컵을 관람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온 방문객이나, 외국인 노동자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이 귀국한 후 우리 사회에 대한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전달해 줄 외국인은 며칠간 월드컵을 관람한 관광객들보다는 장기간 체류하면서 몸으로 우리 사회를 경험한 외국인 노동자임에 틀림없다.
월드컵을 맞으면서 진정 우리가 정성을 쏟고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 외국인 노동자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1993년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해 본격적으로 입국하기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는 93년 6만7,000명에서, 97년 24만5,000명, 2001년 말 현재 32만9,000여명으로 8년만에 5배로 증가했다.
문제는 국내에 체류중인 외국 인력 가운데 약 77%가 불법으로 취업을 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불법 체류자들은 부당한 처우를 받으며 열악하고 억압적인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임금도 착취당하고 있다. 심지어는 불법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며칠 전에는 20대 회사원 3명이 카자흐스탄 출신 외국인 근로자를 사소한 시비 끝에 숨지게 한 사건도 발생했다.
88 서울올림픽에 이어 2002 월드컵을 개최하는 국가로서 이제는 우리보다 못한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마음자세를 지녀야 한다.
서독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뜨거운 사막의 열기를 마다하지 않고 중동의 건설 현장에서 땀을 흘렸던 우리의 과거를 어찌 쉽게 잊을 수 있는가.
가족과 자식을 남겨두고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규범이다. 산업재해로 부상당해 귀국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평생 우리나라를 원망할 것이다.
비인간적 차별대우를 경험한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갖는 부정적 시각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미 우리 정부의 외국인 노동자 정책에 반대하는 국제 연대가 결성돼 캐나다와 호주, 방글라데시 주재 한국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가졌다는 사실을 정부는 알고 있는지.
외국인 노동자를 단기적 생산요소로 여기는 경제논리에서 벗어나, 그들을 민간교류의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한, 외국인 노동자는 앞으로 계속 우리와 함께 생활해야 할 사람들이기에 소중한 자산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 사회의 폐쇄성과 외국인들에 대한 배타성을 지적한다. 중국 화교들이 세계에서 가장 뿌리내리기 어려운 곳이 한국이라고 한다.
동질적 문화와 역사 속에서 외국에 대한 배타성이 체내화 되었다면 월드컵을 계기로 이를 조속히 극복해야 한다. 월드컵은 온 지구인들의 축제이며, 서로의 마음을 활짝 여는데 그 의미가 있다.
손님을 맞는 준비 못지않게 이미 우리의 곁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것이 시급하다. 우리 민족만이 갖고 있는 끈끈한 정을 그들과도 나눠 보자.
이정희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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