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과 산에 꽃이 피고 있다. 살이 찌고 호사스러운 온실 속의 꽃이 아니다. 꽃박람회에 나오는 기이한 모습의 꽃도 아니다.우리가 우리의 땅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꽃이다. 그렇다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개를 숙이고 자세히 관찰해 본다.
어쩌면 이렇게 섬세하고 앙증맞을 수 있을까. 빛깔도 우리의 정서를 닮았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지금부터 6월 말까지. 온갖 꽃이 들판과 산록을 물들이는 시기이다. 꽃여행을 떠나자. 가족이 함께 간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배우는 소중한 기회도 될 수 있다. 부담 없이 우리의 야생화를 볼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곰배령(강원 인제군)
가족 트레킹과 야생화 감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여행지이다.
원시림을 뚫고 야생화를 만나는 기분. 환상적이다. 과거에는 오지 중 오지였으나 인근에 양양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길이 났고 길의 절반 정도는 포장까지 됐다.
본격적인 여행은 강원 인제군 기린면 현리에서 시작된다. 방태산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왕복 2차선 도로로 들어선다.
포장과 비포장이 섞인 길을 따라 약 10㎞. 소가 날아갈 정도로 큰 바람이 분다는 쇠나드리분지를 지나면 설피마을이다.
최근 겨울 여행지로 많이 알려진 곳이다. 설피는 눈 위를 걷기 위해 신발에 덧대는 일종의 눈신발. 워낙 눈이 많은 곳이어서 아예 마을 이름이 됐다.
곰배령 트레킹은 설피마을에서 시작된다. 마을이 들어선 산 속 분지에 삼거리가 있다.
직진하면 단목령을 넘어 양양 땅, 좌회전하면 곰배령을 넘어 다시 인제군 현리에 닿는다.
곰배령 정상까지는 약 4㎞. 오르는 데 1시간 40분, 내려오는 데 1시간 20분 걸린다. 가파른 경사나 바위지대가 없는 거의 평지에 가까운 길이다. 누구나 부담없이 오를 수 있다.
처음 약 1.5㎞는 경운기 바퀴 자국이 보이는 넓은 길. 드문드문 농가가 있다. 농가를 모두 지나면 길의 모습이 완전히 바뀐다.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길은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날 정도로 좁아진다. 사위는 모두 푸른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숲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고사리의 일종으로 거대한 셔틀콕처럼 생긴 꿩고비, 쇠꼬챙이 모양으로 군락을 이루며 솟아오른 속새, 혼절할 듯 향기를 내뿜는 더덕….
약 1시간, 원시림을 지나면 갑자기 하늘이 보인다. 무성했던 수목의 키가 작아지다가 이내 무릎 아래에 도열한다. 정상이다.
곰배령의 정상은 넓은 초원이다. 그냥 풀이 아니다. 모두 꽃풀이다. 천상의 화원이 펼쳐진다. 인제군청 (033)460-2366
▼구룡덕봉(강원 홍천군)
역시 가족 트레킹과 야생화 감상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유명한 오지(?)인 아침가리 가는 길에 있는 산이다.
청정천으로 알려진 내린천의 상류를 함께 구경할 수 있다.
강원 홍천군 내면 광원리가 출발지이다. 여행 마니아가 아니면 홍천군 내면은 생소하다.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 중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고 있는 구룡령길(56번 국도)에 있다. 광원리 마을로 들어가는 월둔교를 지나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물론 주차장은 없지만 길 옆으로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길은 완만한 오르막. 벌목한 나무를 운반하는 임도이기 때문에 차가 통행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그러나 승용차는 금물. 산 속에서 폐차가 되어 나오기 쉽다. 울퉁불퉁 크고 작은 바위가 깔려있어 4륜구동차라도 경험이 많은 운전자가 아니면 힘들다.
길을 걷다 보면 물 소리가 귀를 때린다. 그러나 옆은 무성한 잡목숲. 계곡물을 보려 해도 한 발짝도 들여놓기 힘들다.
길이 계곡을 가로지르는 부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계곡물은 속살을 드러낸다. 한 치의 티끌도 없는 맑은 물이 이끼 낀 검은 바위를 휘돌아 내린다.
약 5㎞를 걸으면 높은 언덕. 월둔고개다. 월둔고개에 삼거리가 있다. 직진하면 아침가리(조경동)를 거쳐 인제에 닿는 길이고 좌회전해 산을 오르면 구룡덕봉이다.
구룡덕봉은 해발 1,388㎙의 높은 산. 그러나 임도가 정상 부근까지 나 있어 오르는 데 그리 힘들지 않다. 길 양쪽은 물론 정상 부근의 평원이 온통 들꽃으로 뒤덮여 있다. 홍천군청 (033)430-2544
▼월악산 자연학습탐방로(충북 제천시)
월악산은 한반도의 ‘5대 악산(惡山)’으로 불릴만큼 험한 산. 산꾼들에게는 인기가 높은 산이지만 그래서 산행에 그리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친다.
월악산은 또한 야생화가 많기로 유명한 산. 월악산 국립공원 관리공단 측이 지나치는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자연학습탐방로를 조성했다.
월악산의 만수계곡 일원으로 계곡길 2㎞를 끼고 조성돼 있다. 표고차가 100㎞도 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나 어르신 모두 쉽게 탐방할 수 있다.
월악산에서 자생하는 150여 종 10만 본 이상의 야생화와 식물이 식재되어있다. 야생화와 수목의 해설판을 456개 설치해 해설자의 도움 없이도 우리 꽃과 식물을 배울 수 있다.
꽃과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룡뇽 등 양서류 8종, 두더지 등 포유류 20종, 조류 80종 등 월악산의 동물도 관찰할 수 있다.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에 해설자가 함께 하는 탐방이 실시된다. 월악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043)653-3250
■야생화 여행법
‘아는 만큼 보인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펴낸 유홍준(영남대) 교수가 한 이 말은 답사 혹은 탐사여행의 격언이 됐다.
꽃여행도 마찬가지이다. 꽃을 모르면 의미가 없는 여행이 된다. 사전 공부는 물론이고 현장에서 직접 배우는 준비까지 갖춰야 재미와 의미가 갑절이 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꽃도감. 시중에는 우리의 야생화를 다루는 손바닥 만한 책부터 사전류책까지 다양한 꽃책이 나와 있다.
모두 컬러이기 때문에 약간 비싼 것이 흠이다. 집에서 미리 공부하기엔 사전류가 좋지만 여행을 하는 데는 무겁다.
사진이 비교적 크고 설명은 요점만 간추린 정도의 꽃책이 좋다. 손에 들고 다녀도 부담 없을 정도의 가벼운 것으로 택한다.
도감을 갖고 있더라도 현장에서 일일이 대조하는 것은 어렵다. 계절별, 색깔별로 분류된 책이 편리하다.
인터넷을 통해 공부할 수도 있다. 꽃 연구가와 꽃을 좋아하는 단체가 만들어놓은 야생화 사이트가 100여 개 가까이 된다. 계절에 맞는 꽃만을 골라 컬러로 프린트하면 가볍고 훌륭한 꽃도감이 된다.
우리 야생화 중에는 눈에 쉽게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꽃도 많다. 돋보기를 준비하면 작은 세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길에서 띄우는 편지
불교의 수행 중에 안거(安居)라는 것이 있습니다. 음렬 4월 보름 다음 날부터 7월 보름까지 한 곳에 모여 일체의 외출을 금하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입니다.
원래 인도의 브라만교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우리와 중국 등 북방불교에서는 음력 10월 보름 다음 날부터 이듬해 정월 대보름까지의 ‘동(冬)안거’가 주로 시행되고 있지만, 더운 여름의 ‘하(夏)안거’가 원래의 형태입니다.
왜 여름에 칩거하면서 수행을 했을까요. 너무 더워서 돌아다니며 수행하기가 힘들기 때문일까요. 한 가지 이유가 되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살생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여름에는 초목의 힘은 물론 각종 동물의 활동도 왕성합니다.
동물 중에는 덩치가 큰 맹수도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벌레도 있습니다.
수행자가 돌아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이 미물들을 밟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집 밖에 나가지 않게 된 것입니다.
곰배령에 올랐을 때입니다. 곰배령 정상은 넓은 평원입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한 번 뛰어보고 싶은 충동이 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곰배령 평원에서는 아이들이 열심히 뛰고 있었습니다. 아예 부모들이 달리기 시합을 부추기기까지 했습니다. 평원 저 쪽의 나무를 돌아오는 코스였습니다.
아이들이 서너 차례 왕복을 하자 푸른 평원에 굵직한 줄이 생겼습니다. 다시 서너 차례 뛰고 나자 아예 길이 생겨 버렸습니다.
발에 밟힌 풀꽃들은 모두 꺾어지거나 뽑혀나갔습니다. 한 어르신이 부모와 아이들을 심하게 꾸짖은 뒤에야 아이들은 달리기를 멈추었습니다.
꺾인 꽃은 씨앗으로 익지 않습니다. 당연히 이듬해에 같은 꽃을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지천으로 널린 야생화라 하더라도 자꾸 밟으면 줄어듭니다.
꽃을 보러 가는 여행은 꽃의 아름다움을 눈은 물론 마음에까지 새기는 여행입니다.
깊은 산골짜기에 소박한 미소를 짓듯 피어 있는 꽃, 너른 산등성이에서 아우성치듯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화려한 꽃무리….
그들을 보면서 꽃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 보는 것이 꽃여행입니다.
스님들의 하안거를 마음 속에 두고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으면 좋겠습니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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