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56) 시인의 시 ‘파도’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때 질풍노도가 내 삶의/ 열망이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한때 질풍노도가’.‘한때 질풍노도가’라고 다시 말하기까지, 그리고 끝내 ‘내 삶의/ 열망이었던 적이 있다’고 소리내지 못하기까지 시인의 가슴은 얼마나 많은 상처로 긁혔을까.
처음과 마지막 ‘한때 질풍노도’ 사이에 바다가 있었다. 갈기 휘날리며 달려오다 엎어지는 바다.
핏빛 노을 아래 흥건한 거품이 부풀어오르는 바다. 바위에 몸 부딪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바다.
김씨가 일곱번째 시집 ‘바다의 아코디언’(문학과지성사 발행)을 출간했다.
고향 경북 울진의 후포항에서 “내 한계는 여기서 만들어졌어, 고향이 싫어”라면서 고개를 저었던 그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바닷가에서 서성거린다.
등을 돌리고 도망치려 하지만 바다가 부른다. 저항하지 않기로 하고 돌아서서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파도의 품이 얼마나 다사로운지를 깨닫는다.
‘매운 실패가 생살을 저며내는 동안에 파도는/ 부서진 제 조각들 시리게 끌어안는다.’(‘파도’에서).
김씨는 첫 시집 ‘동두천’에서부터 바다와 엉겨 붙었다. 바다에서 떠날 수 없었다.
‘물 건너는 사람’(세번째 시집)으로 노래하고, ‘바닷가의 장례’(다섯번째 시집)를 치르면서 그의 바다는 점점 더 깊고 넓어졌다. 이제는 갯벌에 떨어진 아코디언을 보고도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 답할 수 있게 됐다.
‘접혔다 펼쳐지는 한 순간이라면 이미/ 한 생애의 내력일 것이니,/ 추억과 고집 중 어느 것으로/ 저 영원을 켜댈 수 있겠느냐’(‘바다의 아코디언’에서)
‘다 털린 뒤에도 다시 시작’(‘파도’에서)할 수 있는 시인의 넉넉한 힘은 단단하게 뭉쳐진 일상에서 솟아난다.
대출서류를 들고 은행지점으로 뛰어가던 하루, 광우병에 걸린 소떼를 보면서 불쌍해 하던 하루, 수술한 뒤 외래 받으러 요셉병원으로 가던 하루.
시인은 하루 하루를 충실하게 시로 적는다.
그렇게 살고 나니 그의 눈에 ‘쓰려고 작정하면 어느새 바닥 드러내는/ 삶과 같아서 뻘 밭 위/ 무수한 겹주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그를 안아주면서 바다가 속삭인다. ‘고요해지거라, 고요해지거라’(‘바다의 아코디언’에서).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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