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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본다] <10> 제2부(3)포획된 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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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본다] <10> 제2부(3)포획된 의회

입력
2002.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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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닌다. 권력을 행사하는 정부 조직이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하물며 미국 의회처럼 큰 권한과 정치적 비중을 지닌 거대 권력 조직이 복잡한 성격을 띠는 것은 당연하다.미국 의회를 보면 여러 긍정 및 부정의 측면이 교차한다. 사실 어떤 측면이 긍정인지 부정인지 그 여부와 정도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들여다 볼 때마다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는 만화경에 비유될 수 있다.

복잡한 현실과는 달리 우리의 인식은 단순화를 지향한다. 한편에서는 미국 의회를 이상적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미화한다.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주고 행정부에 적당한 제동을 가함으로써 미국민주주의를 떠받들어 온 대들보라고 최상의 수사(修辭)가 동원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 의회가 조롱과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해 있다. 사회 전체 이익을 도모하기보다는 이익 집단, 지역구민, 정당 등 특정의 좁은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자들에 의해 ‘포획(capture)’된 희생물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퍼져있다.

그러한 ‘포획’의 결과로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괜한 심술을 부려 국정을 교착시키는 주범이라고 묘사되기도 한다.

대비되는 이 양쪽 시각은 부분만을 보여준다. 현실에 대한 인식상의 단순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때로는 이해나 시각 정립을 위해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친 단순화는 위험하다.

미국 의회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이 미국 내부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도 매우 큰 만큼 그 복잡한 명암을 균형있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시사점을 얻기 위해서든 대미 관계에서 우리의 실리를 찾기 위해서든 미국 의회의 한 단면만 부각시켜서는 곤란하다.

금권정치는 과장된 표현

우선, 미국 의회와 사회영역 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당 소속을 막론하고 의원은 기업, 노조, 직능 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환경 단체, 여성 단체, 종교 단체 등으로부터 상당 액수의 정치 헌금을 받는다. 의원에게 직접 주는 정치 헌금 외에 ‘소프트 머니’나 ‘독립적 지출(independent spending)’ 등의 편법도 활용하며 수많은 이익 집단이 의원들에게 자금을 지원한다.

이익 집단의 정치자금이 공짜일 리 없고 무언가 특수한 정책 혜택을 노린 것이라는 의심이 자연히 들 수밖에 없다. 정치자금을 고리로 하는 의원과 특수 이익집단 간의 유착은 미국 의회 비판론의 가장 흔한 주제이다.

그러나 대부분 미국 정치학자의 경험 분석에 의하면, 미국 의원에 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이익 집단이기보다는 지역구민의 이익과 여론이라고 한다. 후자가 의원의 재선에 더 직접적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자금을 많이 모으는 이유도 결국 재선을 위해 보다 많은 선거구민에 다가가려는 의도에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금권정치라는 표현은 다분히 과장된 것이라 하겠다.

미국 의원의 지역구민 위주 행태가 꼭 좋은 평가만 받는 것은 아니다. 의원은 자기를 뽑아준 선거구민의 의사를 국정에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위임자(委任者, delegate) 모델을 받아들인다면 지역구민 위주의 의정활동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의원은 선거구민으로부터 신임을 받은바 국정수행 시 자기 소신에 입각해 사회전체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수탁자’(受託者, trustee) 모델을 따른다면 반대의 결론이 나온다. 미국 의원들이 재선 강박증에 빠져 지역구 여론만 눈치보는 탓에 미국 전체의 중장기 이익이 경시된다는 비판이 점증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비판에 의하면 미국 의회는 특수 이익집단이 아니라 지역구민에 ‘포획’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역이기주의가 의원들의 행태를 규정짓는다는 의미가 실려있다. 환경정책, 에너지정책, 군수정책 등 미국 의원들의 지역이기주의 행태가 선명히 노출되는 예를 많이 찾을 수 있다.

정당투표 갈수록 극성

특히 90년대 이래로 식자층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점은 미국 의회에서 정당간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 비해 민주당 의원들은 진보 쪽으로 더욱 동질화하고 공화당 의원들은 보수 쪽으로 보다 동질화했다.

동시에 양당 의원의 평균 이념 성향간 차이가 더 벌어졌다. 이념성향의 일부분이겠지만, 친(반)기업 성향, 환경친화 성향, 친(반)군사개입주의 성향, 그 밖의 낙태, 총기규제, 복지, 인종 등 여러 정책문제 관련 입장에 있어서 양당 의원들은 명확한 양극화를 보이고 있다.

정당간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보여주는 한 지표로, 자기 당 소속 의원 과반수와 함께 같은 방향(찬성이든 반대든)으로 표를 던진 비율인 정당투표율을 들 수 있다. 교차투표율의 반대 개념이다. 정당투표율은 70년대 이래로 계속 증가해 90년대에 최고 수준에 달해 있다.

정당의 양극화한 대립구도 속에서 의원은 정당에 ‘포획’될 가능성이 커진다. 즉, 각자 신념에 따라 활동하기보다는 당 지도부나 당 동료 의원들의 영향 하에 경직된 당파주의 자세를 보일 수 있다.

이럴 경우 의회정치에서 갈등수준이 높아지고 조정과 타협의 여지가 줄어들어 정국의 교착이 발생하기 쉽다.

의회 내 정당 간 대립에 덧붙여, 분할정부(의회 다수당과 대통령 소속당이 다른 경우, 즉 여소야대)에서 격렬해지기 쉬운 의회_대통령 간의 갈등은 정국 교착을 더욱 조장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거버넌스 위기’가 초래되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미국 의회 비판론의 핵심을 이룬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도 미국 의회는 단순화를 거부한다. 정당구도의 양극화가 반드시 갈등 심화와 정국 교착을 가져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90년대 들어와서 정책결정의 효율성이 별로 낮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다.

물론 미국 대통령의 정책입장이 의회에서 통과된 비율은 양당 간 간극이 커지고 분할정부가 계속된 근래에 떨어졌지만, 대통령이 아닌 전체의 관점에서는 입법 과정이 크게 손상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양당 간에 적절한 권력조화가 이루어진 가운데 중도적 기조가 유지되고 여러 정책과제가 성취되었다는 긍정론이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미국 정치의 오랜 숙원인 예산균형의 성취를 들 수 있다. 미국의회에의 여론이 90년대를 거치며 점차 향상되었다는 점도 긍정론의 증거로 지적할 만하다.

적절한 권력조화 장점도

양극화한 정당들이라도 박빙의 세 대결이 전개된다면 평균적 유권자에 호소해야 하기 때문에 극단으로 가기 어렵다. 다극적 구도보다 양극적 구도가 오히려 중간적인 정책타협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이유다.

미국 양당 의원들 간의 이분법적 분화가 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가 좋다 나쁘다 말하기 힘들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이상 살폈듯이 미국 의회를 간단히 성격짓기는 불가능하다. 복잡성과 다면성을 인정하고 명암을 균형있게 평가해야 한다. 그것은 학문적 과제만이 아니다. 미국으로부터 민주주의 교훈을 얻고 미국과의 관계에서 실리를 얻는 데 필요한 실용적 과제이기도 하다.

林 成 浩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메리카 핸드북 / 의원들의 기밀누설

정부와 의회가 어디까지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지는 미국에서도 언제나 논란이 되는 미완의 숙제다. 정부가 보안을 전제로 브리핑한 내용을 의원들이 언론에 흘려 마찰을 빚는 사례는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많다.

현재 정치쟁점화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9ㆍ11 테러 사전 인지 문제도 부분적으로는 정보 공개를 둘러싼 정부-의회 간 힘겨루기가 배경에 깔려 있다. 갈등의 씨앗은 이미 대 테러전 초기 뿌려졌다.

9ㆍ11 테러 한 달 만인 지난해 10월 9일 부시는 “의원들이 무책임하게 정보를 유출해 미군 병사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면서 대 의회 정보브리핑을 양당 상ㆍ하원 총무와 정보위원장 등으로 제한토록 지시했다.

중앙정보국(CIA)이 5일 비공개 청문회에서 보고한 내용이 워싱턴 포스트에 낱낱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미 대통령은 의회에 대한 정보를 차단할 수 있는 행정특권을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이 조치는 중진 의원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닷새 만에 해제됐다.

가장 유명한 유출 사례는 1987년 이란 콘트라 사건의 정부 보고서가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것이다. 패트릭 리히 상원의원이 ‘취재원’임이 밝혀져 상원 정보위 부위원장직을 사임해야 했다. 이 사건은 의회가 정부 관리들의 기밀 누출을 추궁하던 차에 일어나 파장이 컸다.

95년에는 로버트 토리첼리 하원의원이 과테말라의 CIA 암살작전 보고서를 흘려 파장이 일었다. 토리첼리는 “기밀유지 의무보다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는 의원의 도덕적 의무가 중요하다”고 강변, 정부와 장기간 공방을 벌였다.

19일자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백악관 관리들은 “톰 대슐 상원의원이 민주당 원내총무로 있는 한 의회를 신뢰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려 갈등은 갈수록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의원들의 ‘리크(흘리기)’는 매스컴의 조명을 받기 위한 행태라는 게 미 정치학자들의 견해다.

이란 콘트라 의회 청문회에서 올리버 노스 중령은 불법무기 거래를 비밀리에 벌인 이유를 추궁받고 “의원들은 언론에 흘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유승우기자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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