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가난하다.택시기사인 아버지(임하룡) 수입으로는 죽어라 공부하지만 36등밖에 못하는 큰 형(임원희), 건달 같은 작은 형(류승범), 쌍꺼풀에 목맨 누나를 먹이고 학교 보내는 것도 힘들다.
아, 나이키. 그런데 난 그게 갖고 싶다. 그 녀석이 공부 잘하고 잘난 체하는 것은 하나도 안부럽다.
그 녀석이 신고 있는 나이키 운동화…. 하늘의 구름도, 초승달도 내겐 다 나이키의 그 날렵한 슬래시로 보일 뿐이다.
물로 노력은 했다. 칵테일에 꽂는 종이우산을 만들기도 하고, 심부름값도 열심히 챙기고. 하지만 무서운 형들이 빼앗아 가버렸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아 그런데 희망이 생겼다! 그게 뭘까 궁금하죠? ( ‘내 나이키’)
옴니버스 영화(영화제작사는 ‘섹션코미디’라는 용어를 쓴다.) ‘묻지마 패밀리’는 재기 넘치는 중편 3편을 모은 독특한 형식이다.
이런 종류의 영화로는 드물게 총제작비가 5억6,000만원이 들었다.
같은 형식인 류승완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1억원 가량 들었으니 이런 영화로는 불록버스터급.
이 프로젝트는 연극 연출가이자 영화 감독인 장진의 아이디어.
그가 시나리오를 쓰고, 프로듀서로 참가한 ‘묻지마 패밀리’는 ‘내 나이키’(박광현 감독ㆍ33), ‘사방에 적’(박상원 감독ㆍ30), ‘교회 누나’(이현종 감독ㆍ27)로 구성됐고, 총 상영시간은 1시간 33분.
세 이야기는 일견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보인다.
나이키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80년대 초반의 이야기를 그린 ‘내 나이키’와 러브 호텔에 모여든 군상의 이야기를 그린 ‘사방에적’, 첫사랑을 그린 ‘교회 누나’는 장르도 주제도 다르다.
‘내 나이키’가 복고풍의 성장 영화라면, 배신한 여자를 죽이러, 적에게 드라이버 습격을 당해, 불륜 현장을 덮치기 위해 호텔에 모인 이들의 얘기를 그린 ‘사방에 적’은 타란티노의 영화처럼 주인공들의 관계가 얽히고 설키는 액션 영화.
기차에 탄 군인과 결혼한 옛 교회 누나가 눈물을 흘리며 사랑을 고백하다 기차가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머쓱해지는 ‘교회 누나’는 멜로 맛이다.
그러나 영화 출연자들은 세편 영화에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내 나이키’에서 동네 아이들 돈을 뜯던 정재영은 ‘사방에적’에서 변심한 애인을 죽이러 모텔을 찾는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로 성장해 있고, ‘내 나이키’에서 쌍절곤을 휘두르며 깡패를 꿈꿨던 류승범은 결국 모텔 종업원이 됐다.
“언제까지 노력만 할래”라고 핀잔을 듣던 임원희는 극장에서도 플래시로 책을 비추며 공부를 해 결국 국회의원 후보에 오르는 영광( ‘교회 누나’)을 누리게 된다.
세 작품 중에서는 하늘을 나는 자전거로 ‘E.T.’를 패러디한 ’내 나이키’에서 가장 많은 웃음이 터진다.
스태프들의 상당수와 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참여한 이 영화는 옴니버스 영화라는 실험적인 형식에도 불구하고, 무난한 연출과 화려한 출연진으로 만만찮은 웃음과 재미를 선물한다.
이건 일종의 ‘독과점’ 효과에서 비롯된다. 이런 저예산 영화에 신하균 류승범 정재영 임원희 박선영 등 화려한 배역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모두 장진이 대표인 기획사 ‘필름 잇수다’의 소속 연예인들이기 때문.
결국 ‘묻지마 패밀리’는 이들 ‘패밀리’가 없었더라면 성사되기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바로 이 점은 일부에서 이 영화에 대해 불만을 갖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실험정신으로 무장해야 할 저예산 옴니버스 영화가 ‘패밀리’를 앞세운 스타 캐스팅으로 정면 승부를 피해가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영화계 내부에서 한번쯤 논의해야 할 문제이기는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저예산’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문제점 또 하나. ‘패밀리’라는 제목으로 이미 다른 영화사에서 촬영중인데, 여기에 ‘묻지마’만을 붙여 먼저 개봉을 하는 것은 상도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
당초 가제를 ‘사방에 적’으로 삼았던 이 영화는 다른 ‘패밀리’가 제목을 충분히 고지한 4월 이 제목으로 확정됐다. 아쉬운 대목이다. 31일 개봉. 15세.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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