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승주 칼럼] 북한의 게임 플랜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승주 칼럼] 북한의 게임 플랜은?

입력
2002.05.20 00:00
0 0

지난 주, 박근혜 의원이 평양을 방문하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는 사진이 우리나라 신문들의 1면을 장식하였다.초대소로 찾아온 김 위원장과 박 의원이 화기애해하게 담소하는 장면, 두 사람이 활짝 웃으며 포즈하는 장면은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착잡한 심경을 갖게 하여 준다.

왜 이 시점에 이러한 장면들이 연출되는 것인가?

북한은 남북한 관계를 1년 이상 소강상태로 이끌어 가다가 지난 달 초 임동원 특사를 평양에 오게 하여 남북관계를 부활시키고 북미대화를 재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우리의 금강산댐 안전성에 대한 의문 제기와 외교부 장관의 워싱턴 발언을 문제 삼아 대화를 다시 단절시켜 놓은 상태이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 금강산댐에 대한 실태 조사 등 문제와 관련하여 남한 정부에게는 언질을 주지 않으면서 박근혜 의원에게는 긍정적인 약속을 했다고 한다.

박 의원이 비록 국회의원이기는 하나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닐진대 어째서 그에게만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인가?

북한은 그들이 선택한 사람에게, 그들이 선택한 시점에, 그들이 선택한 방법으로 남한에 대하여 선심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북한의 게임은 무엇인가?

지난 4월 3일 임동원 특사가 평양을 방문하고 이어서 제4차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에서 이루어 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정체되었던 남북관계가 진전될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남북대화가 다시 중단된 오늘의 상황에서 볼 때, 북한이 남한의 특사를 초청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그를 만나 준 것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징검다리로 하여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겠다는 의도가 더 컸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은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추진에 집중할 때 남한과의 관계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과 맥락을 같이 한다.

지난 여러 해에 걸친 북한의 대외관계 행태에서 한가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한ㆍ미ㆍ일 3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두 나라 이상과의 관계를 동시에 추구하기보다는 한 나라와의 관계개선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1989년 독일이 통일되고 소련이 붕괴한 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결심하고 그 방편으로 우선 남한과의 대화를 모색하였다.

그 결과 남북은 1991년 기본합의서와 비핵화 선언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간첩단 사건 등으로 진전을 보지 못하자 북한은 1992년에는 초점을 일본에 돌려 가네마루 신을 북한에 초청하는 등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였다.

공교롭게도 국제원자력기구 (IAEA)가 북한의 핵 의혹을 제기하고 미국이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보류할 것을 일본에 종용하자 1993년 3월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고 그 이후 미국과의 직접대화에 들어가게 되었다.

1994년 10월 북한 핵 문제와 관련된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진 이후 5년간에 걸쳐 북한은 남한과 일본을 제쳐 놓은 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집중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 회담을 계기로 잠시 북한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남한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북한은 남한과는 식량지원과 경제협력을 위한 최소한의 관계만을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외교적 노력을 집중 시켰다.

이렇듯 남북관계의 역사적인 틀 속에서 볼 때 박근혜 의원의 방북이 어떠한 의미를 갖느냐는 의문에 대한 해답은 자명해진다고 하겠다.

그것이 남북관계 자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보다는 한편으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선을 포함한 남한 정치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해 보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이 남한 정치에 영향을 주려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뜻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다. 과거의 예로 보아 오히려 그러한 기도는 역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더 크다.

다만 박근혜 의원을 포함한 우리의 정치인들은 그들의 애국 애족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북한의 대남정책에 어떠한 역할을 하느냐는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는 너무나 여러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정외과 교수·前외무장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