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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대서양 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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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대서양 횡단

입력
2002.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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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5월20일 오전 7시54분 미국의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가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 호에 몸을 싣고 뉴욕 남부 가든시티의 루즈벨트 광장을 출발했다.린드버그는 33시간 39분 뒤에 파리의 르부르제 공항에 도착, 대서양 무착륙 단독 비행에 사상 처음으로 성공했다.

조종석의 린드버그는 그 동안 폭풍과 안개에 맞서 싸워야 했고, 무엇보다 잠과 싸워야 했다. 라이언사(社)가 제작한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호는 237마력의 단발기로 최대 시속 208km의 고익식 단엽(高翼式單葉), 1인승 비행기였다.

이 쾌거가 있기 전까지 25세의 우편항공기 조종사 린드버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5월21일 이후 린드버그는 미국의 영웅, 세계의 영웅이 되었다. 파리에서는 군중 10여 만이 그를 에워쌌다.

쿨리지 대통령은 이 젊은 영웅의 귀국을 위해서 순양함을 프랑스로 급파했다. 언론은 그를 20세기의 콜럼버스라고 불렀다. 뉴욕에서 열린 환영 퍼레이드에는 무려 4백만 명이 몰렸다

린드버그는 텍사스 육군 비행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24세 때인 1926년에 세인트루이스~시카고 우편항공기 조종사가 되었다.

대서양 무착륙 횡단에 성공한 뒤에는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외과의사 알렉시스 카렐과 함께 장기(臟器)를 몸 밖에서 산 채로 보존하는 ‘카렐-린드버그 펌프’를 고안하기도 했다.

1938년에 출간한 ‘장기 배양’은 린드버그와 카렐이 수행한 공동 연구의 보고서다. 린드버그는 귀국한 뒤 1939년 육군성에 배속됐지만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에 공개적으로 반대해 해임당했다.

그러나 미국이 참전하자 린드버그는 민간인으로서 전쟁 수행에 협력했고, 1954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를 미군 예비역 공군준장에 임명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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