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9ㆍ11 테러 전에 알 카에다 조직의 공격 정보를 보고받고도 미흡하게 대처했다는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미 언론들은 정보기관들이 미국 주요 정부기관을 겨냥한 알 카에다의 여객기 납치 자살테러 공격 계획을 9ㆍ11 테러 2년 전과 5년 전 등 최소한 두 차례 경고받았다고 보도했다. 침묵을 지켰던 부시는 직접 해명을 하고 민주당에게 정치공세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추가로 드러난 사실들
미 의회도서관은 9ㆍ11 테러 2년 전인 1999년 9월 국가정보위원회(NIC)를 위해 작성한 보고서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 조직 알 카에다 산하의 ‘순교자 여단’ 테러범들이 여객기를 납치해 국방부 본부건물을 자폭공격할 가능성을 경고했다고 미 언론들이 17일 보도했다.
보고서는 테러범들이 납치한 여객기에 고성능 폭탄을 싣고 국방부 외에도 백악관, 북버지니아주 중앙정보국(CIA) 등을 공격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연방수사국(FBI)이 1996년 알 카에다가 항공기를 이용해 CIA나 기타 연방건물을 대상으로 자살공격을 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했었다고 18일 전했다.
■야당의 공세와 백악관의 반격
부시는 비난이 비등하자 17일 “테러 경고를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며 처음으로 해명했다.
부시는 이날 백악관에서 “운명의 그날 아침 적이 살상을 위해 항공기를 사용하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미국 국민 보호를 위해 내 권한 범위 내에서 모든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당시의 정보는 구체적이지도, 명확하지도 않은 수준이었다”고 해명했다.
부시는 민주당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는 “불행하게도 워싱턴 정가에서는 사후의 결과를 토대로 꿰어맞추기식 비판을 하는 분위기가 제2의 천성이 돼가고 있다”며 “야당이 비난하는 배후에는 불순한 정치적 동기가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민은 희생자들의 슬픔을 정치적 이득으로 바꾸려는 일부 정치인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리처드 게파트 하원 민주당 원내총무는 CNN과의 회견에서 “의회가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며 이 문제를 좌시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톰 대슐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도 “문제는 그 같은 정보를 보고받고도 왜 부시가 가만히 있었냐 하는 점”이라고 지적하고 “정보기관 간의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점도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행정부와 정보기관의 공조 부재 비판
미국 유력지들은 부시의 미흡한 대처보다는 행정부의 비효율성과 정보기관 간의 공조부재를 비판했다.
뉴욕 타임스는 17일자 사설에서 “문제는 부시가 경고를 무시했다기보다는 정보들이 불충분했다는 데 있다”고 지적하고 “행정부가 9ㆍ11 테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입수했는데도 이를 묵살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국민들은 정부가 엉터리라는 혼란 속에 빠져들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이어 의회가 백악관 공격에 앞장서고 있지만 동일한 정보를 공유했던 의회도 경고를 무시한 일부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자 사설에서 “이번 대소동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전제하고 “부시가 보고받은 정보는 너무 일반적인 내용이라 조치를 취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백악관을 두둔했다.
또 “연방정부 각 독립기관들의 테러 가능성에 대한 보고와 분석이 제각각 이루어지는 바람에 행정부가 단일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며 행정부 시스템 부재를 공격했다.
그러나 시카고트리뷴은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는 과거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관련된 음모설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진주만 음모설은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일본의 공격 정보를 받고서도 2차대전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방관했다는 주장을 말한다.
이 신문은 “정보는 완전히 공개하면 의혹이 해소되고 단순한 경고라고 해도 시민들이 믿고 따르지만, 감추면 의혹이 눈처럼 불어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syy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