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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차 한일교류좌담회 / 글로벌 시대의 韓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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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차 한일교류좌담회 / 글로벌 시대의 韓日

입력
2002.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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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오랫동안 한일 양국은 문화의 이질성을 ‘차이’보다는 ‘차별’ 관점에서 보아 왔습니다. 동질성조차 ‘문화 동조(同祖)론’처럼 병합의 수단이란 관점에서 강조됐습니다.따라서 같다거나 다르다는 논리는 모두 지배와 예속, 갈등과 대립의 논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동안의 좌담회를 통해 ‘차별’이 아닌 ‘차이’가 얼마나 소중한가,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이 상호 이해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확인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정립한 ‘같으면서도 다른 것’, ‘다르면서도 같은 것’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양국 문화의 동질성을 확대해 보고, 차이에 바탕한 서로 다른 역할을 찾아 봄으로써 서구 문명의 수신자였던 아시아가 세계를 향해 발신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와 가치를 발견해 내자는 것입니다.

△우메하라= 이번 좌담회는 한일 양국의 우호ㆍ친선 관계를 바탕으로 세계에 어떤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느냐가 주제입니다. 동아시아에서도 유럽연합(EU) 비슷한 아시아 공동체, 즉 아시아연합(AU)을 구상할 때가 됐습니다.

그 기초는 한일 친선입니다. 그것이 안되면 아시아의 연합체ㆍ공동체 구상은 불가능합니다. 유럽에 비교하자면 일본은 침략자인 독일, 한국은 피침략자인 프랑스와 비슷합니다. 유럽연합은 독일과 프랑스의 사이가 좋아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이 일본과 한국, 일본과 중국 사이에 제대로 이뤄진다면 공동체의 기초는 만들어질 것입니다.

한일간의 친선에서 동질성과 이질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합니다. 완전히 같다거나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은 어느쪽이든 위험합니다. 한국은 부계 사회입니다. 아버지쪽 친척이 중요합니다. 일본은 부계도 모계도 아닌 쌍계(雙系) 사회입니다. 이런 차이를 인식하면서 공통점을 찾아 나가고 싶습니다.

△박우희= 아시아에서의 공동체 구상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 뿐만 아니라 동남아 국가연합(ASEAN)까지 포함해야 하는데 마땅한 공통 요소를 찾기 어렵습니다.

다만 범위를 한일 양국으로 좁힌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현재 한일 양국 경제는 경제 구조나 발전 단계로 보아 EU 초창기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일본은 패전 이후 고도성장을 지속,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 됐습니다.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7% 이상을 차지, EU 전체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90년대 이후 장기적 경기 침체를 겪고 있지만 이는 역으로 상대적 경제 격차 해소라는 점에서 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마치다=한국과 일본의 결속에는 여전히 과거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언제든 양국 관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과거 문제는 역사 교과서, 야스쿠니(靖國)신사, 군대위안부 문제 등 3가지로 요약됩니다.

한국은 지금도 일본이 사과도, 보상도 안했다고 합니다만 정말 그렇습니까. 93년 5월 경주를 방문한 호소카와 야스히로(細川護熙) 당시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한국어를 말살한 일본어 교육과 창씨개명 등을 들어 “참기 힘든 고통을 끼쳤다. 우리의 행위를 깊이 반성하며 마음으로부터 사과드린다”고 밝혔습니다.

군대위안부 문제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 시절 일본 국민이 성금을 모아 “면목없는 일을 저질렀다. 일본 국민이 모두 사과한다”는 편지와 함께 전했습니다. 양국이 좀 더 어른스럽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런 틈새는 메워지지 않습니다.

△신영언=정치든 문화든 사람이 하는 일이어서 사람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교류나 상호 이해가 가능하겠습니까. 이해를 위해서는 정직하고 솔직해야 하며 그것은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스스로 해야 할 바를 아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입니다만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환영받지 못한 독일 사람이 “참 이상하다. 우리는 프랑스 사람이 밉지 않은데 왜 그들은 우리를 그렇게 미워할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인간이 닭을 잡아 먹었다면 인간이 닭을 미워할 리 없지만 닭은 인간이 미울 것”이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가미가이토=야스쿠니신사 문제에 대한 한국측 지적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교과서 검정 제도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국민을 좀 더 믿어 주십시오. 지난해 문제가 된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채택 비율은 극히 낮았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교과서 검정 제도 자체를 폐지, 출판사가 발간하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낼 수 있도록 할 때입니다. 그래도 일본 국민이 역사 왜곡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어령=일본은 과거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동아 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엇비슷한 얘기를 하면 으레 ‘대동아 공영권’을 연상하고 반발하게 됩니다. 아시아 공동체를 구상하는 데는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아시아 공동체 구상에서 일본은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동등한 위치에서 합리적 이치를 내세워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협상이란 힘이 같을 때의 이야기이지 서로 다를 때는 어느 한 쪽이 손해를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더욱이 가해자는 언제나 손해를 볼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설사 한국이 떼를 쓰더라도 이를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박우희=한국 사람의 심성은 일본과 달라, 누가 양보를 하면 그것을 전부 받아 들이고 그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려는 마음을 갖습니다. 일본이 어렵더라도 먼저 양보한다면 양국간의 다른 문제까지 손쉽게 해결되리라 봅니다. AU와 같은 거대한, 앞으로 10년 20년 30년, 장대한 목표를 얘기하려면 더욱 그래야 합니다.

일본은 80년대 말까지 산업화 과정에서 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끌어 올려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90년대 들어 상황이 돌변,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을 거치고도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과거의 사상과 관습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쳤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일본이 과거 문제를 둘러싼 한국의 요구에 쉽사리 응하지 못하는 뿌리도 거기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메하라=일본의 문제는 전통의 고수가 아니라 전통을 버린 것입니다. 일본인에게 오랫동안 정신적 힘이 됐던 불교와 신도(神道)를 버린 것입니다.

신도는 국가원수를 신으로 떠받드는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자연 속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며 자연을 소중히 하는 자연숭배가 본질인데 그런 신도를 버렸습니다. 유교도 버렸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인(仁)의 마음, 신(信)의 마음을 버린 것입니다.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천황 중심의 국민 통합 과정에서 ‘일본이 가장 훌륭한 나라’라는 그릇된 인식이 심어졌습니다. 강한 군대를 만들어 이웃나라를 침략하고, 종합상사를 만들어 제2위의 경제대국을 이룩했습니다.

△가미가이토= 일본 사회에서 어느 한 사람이 큰 소리를 낸다고 전체 여론이 곧바로 호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반발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현재 한일간의 문제를 그리 심각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그 세대 특유의 감회가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 뒤를 이은 우리 세대는 자신있게 말해 고이즈미 총리와 같은 사고 방식에는 절대로 동조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래 세대는 약간 반동적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다소 걱정되지만 고이즈미 총리 세대처럼 ‘오른쪽’으로 흐를 우려는 없다고 봅니다. 고이즈미 총리 세대가 은퇴할 때쯤이면 정치인을 포함한 일본인들의 대한(對韓)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이런 예상이 빗나갈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도록 빌고 노력하겠습니다.

△신영언=1998년 우리 정부가 일본 대중문화 개방조치를 취했을 당시의 여론조사에서 양국 관계를 낙관적으로 보는 비율은 한국쪽이 높았습니다. 한국은 72%, 일본인은 49%가 양국관계 호전을 점쳤습니다. 한국인이 역사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일본 문화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고 수용하려 하는 태도를 반영한 것입니다.

이웃나라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져 주길 바란다지만 한국쪽은 오히려 그런 마음가짐이 돼 있습니다. 교과서 문제에 대해 과민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의 전부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마치다=한반도에서 남북통일이 언제 이뤄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통일 비용을 1조 달러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GDP의 2배, 예산의 7배에 이르는 거액으로 한국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이 한반도 통일을 경제적으로 도와 남북 통일에 기여한다면 한국민의 대일 감정도 많이 풀릴 것입니다. 남북 관계에 있어서 일본의 노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이어령=때로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야말로 문화적 통합력입니다. 이런 통합력을 바탕으로 아시아가 문화 발신자가 된다는 인식은 억지가 아닙니다.

21세기 초두의 9ㆍ11 테러는 문화 충돌의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월드컵은 반대로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행사입니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그것도 원한을 가진 두 나라가 연인원 400억명이 지켜 보는 큰 잔치를 함께 여는 것은 역사적 의미를 띱니다.

월드컵의 성공은 갈등과 대립의 역사가 화해와 융합, 통합의 역사로 전환할 수 있음을 세계에 보여 주게 됩니다. 단순한 스포츠행사가 아닙니다. 한일 문화의 바탕에 깔린 특유의 통합력이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과 믿음, 미래의 문화적 약속으로 번지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메하라=서양의 일신교 문화는 늘 갈등과 혼란을 부르게 마련입니다. 일신교와는 거리가 멀고 어떤 의미에서는 다신교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신교 문화의 가능성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입니다. 동아시아 지역에는 아직 도덕률이 남아 있습니다. 택시에서 분실물이 생기면 70% 가량이 회수된다고 합니다. 유교와 불교의 영향 덕분입니다. 일본도 일부 남은 도덕심으로 그나마 버텨 왔습니다.

저는 미국의 번영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가 의문입니다만 노동은 힘들기 때문에 그에 상응한 대가를 얻어야 한다는 서구식 사고로는 번영을 이룰 수 없습니다. 노동은 힘들지만 즐겁다고도 느낄 만한 기업을 만드는 것이 기업주의 이상일 것입니다. 그런 전통적 가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를 한일간에 진지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박우희=한때 경제 구조, 특히 대기업 구조에서 ‘아시아적 가치’의 중심으로 여겨졌던 일본형ㆍ일본식이 지금은 효력을 잃었습니다. 일본은 근본적 대책 대신 부분적 변형, 즉 종신고용제나 연공서열제 등의 일부 수정만을 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현상은 아시아에서의 경제 공동체 구상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경제적 동질성 등 밝은 요인들도 있습니다. 과거 아시아 지역의 수직적 분업도 수평적 분업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분업 구조를 어떻게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구조로 변화시킬 것인지, 그런 새로운 구조와 아시아의 문화적 공감대는 어떤 연관을 갖는지를 꾸준히 논의해야 합니다.

△가미가이토=중국은 북한이 완충지대, 또는 안전지대로 남기를 바랍니다. 한반도가 한국 중심으로 통일돼 미군 기지가 있는 한국이 중국과 국경을 맞대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 것이지요. 중국은 기본적으로 대만을 놓고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고, 개방됐지만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정보에 관해서도 아주 폐쇄적입니다. 중국과의 급속한 포괄적 통합 구상은 그래서 아직은 어렵습니다.

더욱이 중국은 동아시아 질서를 늘 자국 중심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주변국을 한 단계 아래로 낮춰 보던 것이 근대까지의 역사입니다. 중국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강력한 나라가 되더라도 그런 식의 동아시아 경제권, 문화권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국에 대해 주변국이 평등한 존재임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라도 한국과 일본은 협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어령=한국도 일본도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하는 시점에 왔습니다. 저는 현재 진행중인 정보혁명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정보는 주고 받은 것입니다. 상호성이 중요합니다. 한국이나 일본 등 동양은 전통적으로 관계론을 중시해 왔습니다.

도덕도, 기술도, 생활도 모두 관계에서 출발했습니다. 군신(君臣)ㆍ부자(父子)지간 등의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정보기술(IT)은 관계기술(RT)이라고도 합니다. 산업혁명에 적합했던 서구문명에 비해 동양문명은 정보혁명에 가장 적합합니다.

서양은 ‘이더(either), 오어(or)’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래서 IT 혁명에서도 오프라인을 놓아 두고 온라인으로만 갔다가 저 지경이 됐습니다. 반면 일본이나 한국은 온ㆍ오프라인을 통합할 수 있는 동양 특유의 ‘보스(both), 올(all)’ 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仁)의 정신처럼 양쪽의 모순을 보완하는 관용ㆍ포용력입니다.

△마치다=한중일 3국은 유교와 한자, 젓가락이라는 공통된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또 정(情)의 문화, 가족주의, 근면의 문화도 있었습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정과 가족주의 등의 전통 문화가 크게 무너지고 있고 한국도 전과 같지 않습니다.

△신영언=한국의 젊은이들이 대중문학을 통해서 일본 문학을 이해하는 경향이 있어서 일본 사람의 사고 방식을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보다 격조 높은 작품들이 번역돼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11세기 수필집인 ‘마쿠라노 소시’(枕草子)나 19세기말의 평론집인 ‘쇼세쓰 신즈이’(小說神隨) 등이 있습니다.

정리=유승우기자

swyoo@hk.co.kr

김철훈기자

chkim@hk.co.kr

■좌담회를 마치며

▽이어령

요미우리신문과 한국일보가 오랜 시간을 두고 준비한 이 행사에서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했습니다. 6회의 좌담회에 걸쳐 우리가 내세운 큰 주제는 ‘이해의 길’이었습니다. ‘이해’는 영어로는 ‘언더스탠딩’(Understanding)입니다.

흥미롭게도 그동안의 좌담회에서 한국과 일본측은 높이 솟는 것이 아니라 밑에, 아래에 서는 ‘언더-스탠딩’을 했습니다.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자신이 높이 오르지 않고 양측이 서로 ‘언더-스탠딩’을 한 자리였습니다. 상대문화를 이해하는 참으로 귀중한 모델을 두 신문사를 통해 양국민에게 보여 준 것입니다.

우리가 6회에 걸쳐 걸어 온 길은 대단히 전진적인, 앞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대화에서는 언제나 언젠가 한번 왔던 길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또 과거의 상처와 과거의 일에 대해 쌍방이 서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시아공동체(AU)를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문화, 문화의 힘을 전제로 아시아가 하나가 되고, 아시아가 협력하는 길을 모색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 온 길 끝에 월드컵이 있습니다. 한일이 공동개최하는 이 스포츠행사는 전세계에 보이는 새로운 한일 관계입니다. 세계를 향해 손을 잡고 동일한 목적을 향해 열정과 힘을 쏟는 기회입니다.

그래서 월드컵에서 볼 수 있는 한일 관계의 통합력과 세계에 보내는 아시아의 힘이 무언지를 바로 이 축구, 월드컵의 상징성을 통해 끝맺음 하려고 합니다.

인간이 어머니 뱃속에서 발길질을 먼저 했듯이 축구는 종교와 언어와 문화가 다른 모든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포츠입니다. 축구공은 32쪽의 5ㆍ6각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흰색과 검은색이 함께 있습니다. 융합과 화합입니다. 월드컵을 통해 한국과 일본은 이 5ㆍ6각형 역할을 훌륭하게 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이번 공동개최에서 일본이 잘못하거나 한국이 잘못하면 아시아 사람의 능력이 없다고 얘기할 것입니다. 거꾸로 일본이 잘하거나 한국이 잘했을 때 축구의 전통이 없던 나라가,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가 얼마든지 월드컵을 훌륭히 치를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이 새로운 아시아관이 될 것입니다.

한일 양국만 놓고 볼 때는 갈등과 대립을 보지만 세계속에서 양국을 볼 때는 어쩔 수 없이 양국은 함께 평가받는 운명체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것에 대해서 융합할 수 있는 힘을 전세계에 보여줄 기회인 월드컵을 앞두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양국이 협력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계속 있을 것입니다.

▽ 우메하라 다케시

미래의 큰 꿈을 위해 친선을 기울여야 할 한일 양국 앞에 역사 교과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군대 위안부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문제가 된 교과서 내용을 충분히 살펴 보지는 않았지만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이대로 읽을 수 없다’ ‘이런 교과서가 나온 것이 부끄럽다’는 감정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사 참배는 보수 정치인 가운데 2차 대전 당시의 국가주의를 그대로 갖고 있거나 거기에 가까운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 총리가 히틀러의 묘에 참배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을 일본의 총리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참배에 따른 한중 양국의 반발로 아무리 둔감한 고이즈미 총리라도 이제부터의 일본은 역시 한국, 중국과의 친선이 중요하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그것과 모순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군대 위안부 문제는 복잡하지만 앞의 두 문제가 해결되고 일본이 어떤 성의를 보이면 해결되리라고 봅니다.

정치적인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한일 문화의 공통점을 생각할 때 나는 근대주의가 이미 파탄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현재 근대주의를 대표하는 것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입니다. 미국의 일신론적, 호전적인 태도, 미국에 세계의 돈을 모아 미국만 번영하면 된다는 식의 시각은 제3차 세계대전, 또는 핵전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합니다.

이런 점에서 글로벌리즘에 찬성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근대 문명이 자연을 노예로 삼고, 인간 중심주의로 자연을 파괴한 문명이란 점입니다. 근대주의의 뒷편에는 자연파괴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은 거의 반성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으로서는 세계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런 두 가지의 결점과 달리 동양 문명에는 자신을 절대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일신론적 인식은 없습니다. 상대를 배려해 주는 정신이 불교나 유교에는 있습니다. 또 자연과 공존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상은 한국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 도교 사상에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그런 동양문명의 전통을 살려 그를 기초로 21세기 문명의 조감도를 그려 나가는 작업은 한일 공동으로, 또 중국까지 포함해서 정치ㆍ경제 뿐만 아니라 문화적 견지에서 토론해 나아가는 것은 세계평화에 도움이 됩니다.

6회에 걸친 한일 좌담회를 기획한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의 선견지명에 경의를 표합니다. 앞으로도 두 신문이 중심이 돼 양국 친선을 도모하는 움직임을 계속해 주길 기대합니다.

*우메하라 다케시

77세.철학자.일본 펜클럽회장/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고문.일본문화훈장 수훈.저서 '숨겨진 십자기-법륭사론'등

*이어령

68세.초대 문화부장관·새천년준비위원장·이화여대석좌교수 역임.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등

*신영언

62세.성신여대 일어일문학과 교수.일본언어문화학회 회장.저서 '신부발견' '일본단편소설 해설 감상'등

*마치다 미쓰구

67세.전직 외교관.성균관대 교수.주한 일본대사관 공사·공보문화원장·부산총영사관 총여사 역임.

*박우희

67세.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동북아경제학회장.한국경제학회장.일본 통상산업성 자문교수.한일포럼위원역임.

*가미가이토 겐이치

54세.데즈카야마학원대 교수.비교문화·한일문화교류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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