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지리적 근접성과 언어의 유사성, 불교와 유교에 대한 숭상, 젓가락 사용 등 공통점을 생각하면 스페인-포르투갈 관계와 비슷하다. 그러나 두 나라 국민의 서로에 대한 적개심, 견제심리 등은 독일과 프랑스 국민의 관계와 같다. 한국과 일본은 이혼을 앞두고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부부처럼 모든 일에 의견충돌을 일으키고 있다.”최근 뉴욕 타임스(12일자)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이렇게 평가했다. 적확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달리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운 지적이다. 서양 기자의 눈에 비친 모습만큼이나 양국 국민들의 서로에 대한 느낌은 근본적인 문제로 따지고 들어갈수록 서먹서먹하기만 하다.
이번 월드컵은 바로 이런 앙금을 털어내고 미래지향적인 우호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데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한국일보와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이 8~10일 서울에서 공동개최한 한ㆍ일 교류 좌담회에서도 학자ㆍ언론인들은 한결같이 “월드컵을 계기로 민간교류를 확대해야 하며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 차원의 관계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민간교류라는 것이 분야별로 동기와 관심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인위적으로 활성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양국 정부는 이미 1999년 총리 회담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올해를 ‘한ㆍ일 국민교류의 해’로 정하고 다채로운 교류사업을 추진했다. 정부가 촉매로 나선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들어 특히 문화ㆍ학술 교류를 중심으로 스포츠ㆍ청소년ㆍ관광ㆍ지역교류에 이르기까지 광복 이후 최대 규모의 한ㆍ일 교류행사가 진행 중이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본의 국보ㆍ보물급 문화재 298점을 볼 수 있게 된 것도, 합작 영화(‘서울’)나 드라마(‘프렌즈’)가 제작ㆍ방영된 것도 그런 노력의 결과이다. 특히 작년 7월부터 이달 19일까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히로시마(廣島) 등을 순회한 국립민속박물관의 ‘조선 왕조의 미’전은 현지인들에게 한국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새삼 불러일으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오사카(大阪) 국립민족학박물관은 서울의 아파트에 살면서 유교식 제사를 지내는 평균적인 한국인 가정의 살림살이 3,500여 점을 고스란히 가져가 보여주는 기획전도 열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이가 그 어느 때보다 많고 김치가 인기상품으로 선정되는가 하면 일부 한국 연예인이 인기를 끄는 것도 긍정적인 현상이다.
매년 일본 정치인의 신사 참배 논란, 군대위안부 배상,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문제 등이 양국 관계를 냉각시키곤 하지만 민간교류는 양국 관계가 국가ㆍ정치적 차원이 전부일 수 없음을 실감케 한다.
잊을 수는 없지만 매달릴 수만도 없는 과거사 문제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서로를 제대로 알고 알리려는 노력을 덮을 수는 없다. 그러한 몸짓들이 결실을 거두는 훗날 월드컵은 그 출발점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이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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