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의 템포를 바꾸려면 기어변속이 필요하다. 그는 교체 투입될 때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다.”거스 히딩크 감독은 16일 스코틀랜드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한 안정환(26ㆍ페루자)을 자동차의 기어변속에 비유했다.
선발 출전보다는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선수가 승부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히딩크 감독의 기어변속은 대성공이었다.
안정환이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 본선에서 골을 책임질 마지막 해결사의 입지를 굳혔다.
폴란드와 유사한 힘의 축구를 구사하는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후반 45분 동안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한 그가 황선홍(34ㆍ가시와)에 버금가는 순도 높은 스트라이커임을 입증한 것이다.
공격형 미드필더와 측면공격수를 오가던 그는 화려한 드리블과 칼날 같은 슛으로 유럽 프로리그에서나 나올법한 골장면을 연출하며 그동안의 부정적인 면모를 일신했다.
그가 절묘한 페인팅으로 수비수 1명을 따돌리고 넣은 첫 골은 2000년 12월20일 한ㆍ일전에서 터뜨렸던 선제골과 비슷했고 골키퍼가 나온 것을 보고 가볍게 차넣은 토킥은 한국축구에서 처음 보는 명장면이었다.
역시 이탈리아 세리에 A를 경험한 스타플레이였다.
그가 최전방 공격수로 나선 것은 의외였다. 당초 설기현과 황선홍이 나설 위치였지만 설기현이 경기 하루 전 왼쪽 허벅지를 다쳐 안정환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
황선홍 대신 조커의 임무를 부여 받은 그는 “20분 정도 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2골이나 넣게 됐다”며 겸손해 했다.
히딩크 감독은 “팀 내 가장 날카로운 슛을 구사하는 선수”라며 안정환의 골 결정력을 높이 평가했다.
안정환은 공격형 미드필더를 선호하고 있지만 교체 공격수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의 체력과 수비력, 경기경험에 물음표를 던졌던 히딩크 감독은 “많은 요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미드필더의 능력보다는 그의 문전 결정력이 더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윤정환(29ㆍ세레소 오사카)과의 콤비플레이로 2골을 합작하는 등 절묘한 호흡을 과시해 본선서도 ‘두 정환’의 동반 출격이 이뤄질 전망이다.
플레이메이커 자리를 다투던 안정환이 조커 공격수의 유력한 후보로 떠오름에 따라 공격진의 주전 경쟁도 더욱 치열해 질 것같다.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처음으로 골 맛을 본 안정환은 “어시스트에 주력할 계획이었지만 골을 넣을 수 있는 역할을 마다할 사람이 있겠느냐”며 기어변속의 임무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이준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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