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5월17일 김현철(金賢哲)씨를 구속했던 대검 중수부 수사팀이 17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 모였다. 청와대 및 검찰 수뇌부와의 갈등을 딛고 살아있는 권력을 단죄한 그들은 매년 이날이면 조촐한 모임을 갖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온 터였다.이날 저녁자리에선 5년만에 재현된 역사의 비극에 참석자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면서 밤늦게 술잔을 기울였다. 같은 시각 대통령의 3남 김홍걸(金弘傑)씨가 서울지검 특별조사실에서 검찰과 구속영장 청구여부를 두고 피말리는 공방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임의 좌장인 심재륜(沈在淪ㆍ당시 중수부장) 변호사는 “그때와 너무나 똑같다”란 말을 반복했다. 그는 하지만 “역사의 교훈을 무시한데 대한 자업자득”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17일 현철씨를 구속수감하고 나서 대검 청사너머로 보았던 별빛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믿을 곳은 수사팀 밖에 없었다”며 “돌이켜보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수사성공을 가져왔다”고 현재 수사팀의 분발을 당부했다.
다른 관계자는 구속을 앞둔 현철씨와의 성경문답을 소개하기도 했다. 수사팀은 5월15일 현철씨가 대검청사에서 첫날밤을 맞을 때 욥기를 인용, 설득에 나섰다.
“당신은 하나님이 보지않는다고 엄청난 주장을 할지 모르나 당신은 하나님앞에서 얼마나 떳떳하시오”라고 현철씨의 자백을 유도한 것. 그러나 마음을 닫은 현철씨는 다음날 시편 중 ‘다윗의 노래’를 펴면서 “이 종을 재판에 붙이지 말아주시고 원수들의 손에서 저를 건져주소서…”라고 오히려 검찰을 압박했다고 한다.
수사팀 관계자는 “지금 수사팀도 유ㆍ무형의 압력탓에 엄청난 부담을 지고 있을 것”이라며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후배들이 한층 준엄한 수사를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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