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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쉬핑뉴스' - 업보의 덫에 걸린 상처받은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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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쉬핑뉴스' - 업보의 덫에 걸린 상처받은 영혼

입력
2002.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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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인간은 울음으로 이 세상과 첫 대면한 후 끝없이 속으로 운다. 어떤 사람은 상처를 입히는 것으로 제 상처를 잊으려 하고, 어떤 사람은 상처를 준 세상과 부딪치지 않으려 자기 속으로 파고든다.‘쉬핑 뉴스’(The Shipping News)는 그 상처와 치유에 관한 영화다. 상처는 깊고, 치유는 단순하지만 그 울림은 묵직하다.

전반부 10분을 놓치는 것은 영화의 절반쯤 놓치는 것이다. 불행하고 외롭고, 보잘 것 없는 북부 뉴욕의 신문사 윤전공 쿼일(케빈 스페이시). 그를 주눅들게 하는 것은 물이다.

아버지는 어려서 그가 수영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업신여겼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고, 작업을 하면서 잠깐 졸고 있는 사이에도 익사하는 상상이 그를 덮친다.

앉아있는 케빈 스페이시를 익사하는 모양으로 처리한 기발한 상상과 독특한 화면의 잔상이 오래 남는다.

우울한 일상을 살던 쿼일은 불 같은 성격의 아내 페탈(케이트 블랑쉬)를 만난다. 그의 차에 불쑥 뛰어든 페탈. 배가 고프다며 7시30분에 아침 식사를 하고는 대뜸 10시까지 섹스를 하자며 모텔로 향한다.

쿼일과 결혼 후 임신을 한 그녀는 “한번만 더 내 몸을 망치면 죽여버리겠다”고 했고, 태어난 아이가 “엄마” 대신 그녀의 이름을 부를 정도로 아이에게 무관심한 엄마였다. 그에게 물은 또 다른 비극으로 다가왔다. 아내가 정부와 달아나다 차가 강에 빠지는 바람에 익사했다.

하지만 물과의 악연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유골이라도 보겠다며 불쑥 찾아온 고모(주디 덴치)는 “고향으로 가자”며 그와 아이를 끌고 캐나다 북부의 고향 뉴펀들랜드로 이사한다.

그곳은 사방이 물이었고, 아버지가 살다 버린 옛 집은 바닷가 절벽에 있었다. ‘개미버드’라는 어촌 지역 신문에 취직한 그는 선박 뉴스를 쓰는 기자가 되고, 남편을 잃고 발달장애 아들과 살고 있는 웨이비(줄리안 무어)와 만난다.

‘개 같은 내 인생’에서 어린아이의 통찰력에 대해 말했던 라세 할스트롬 감독은 이번에도 아이를 숨겨진 진실의 발견자로 설정했다.

밤마다 개를 데리고 나타나는 노인, 아이는 “절대 꿈꾼 게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는 처음에 아이가 헛것을 보는 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집안이 해적이었고, 노략질을 하며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조상의 본성이 결국에는 자신으로 아버지로 하여금 고모를 강간토록 했다는 사실까지 알아낸다.

그가 발견한 것은 집안의 비밀만이 아니다. 무기력한 윤전공이었던 그는 ‘쉬핑 뉴스’를 쓰면서 숨겨진 재능을 조금씩 발견한다.

자동차 사고현장에서 실감나는 뉴스를 쓰는 대신 구토를 하는 부실한 사건 기자이지만 유조선이 바다를 오염시킨다는 사실을, 히틀러의 요트를 구입하고 빈털터리로 바다를 유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쓸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선조의 업보를 뒤집어 쓴 그가 집이 전복된 후 자유로워지고, 아이가 마치 영매처럼 집안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동양적 주술의 느낌이 어색하지 않다. 운명과 사람 관계에 대한 감독의 직관적 세계관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한 치의 모자람 없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와 추위가 전해질 듯한 차가운 화면이 110분의 상영시간을 사랑하게 만든다. 24일 개봉. 18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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