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장의 리더십이 대학가의 화두로 떠올랐다. 최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대학가의 내부 갈등은 총장 직선제의 부작용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빚어졌지만, 무엇보다도 총장의 리더십 문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서울대 인문대의 한 교수는 TV 드라마 ‘위기의 남자’에 빗대 ‘위기의 대학총장’이라고까지 했다. 최고의 지성인 대학 총장들이 왜 불신받고 있는 지에 대해 교수사회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청렴성 결여, 대화부재
대학 총장들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총장이라는 직위 자체로 권위를 부여받았는데,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도덕성과 전문성을 토대로 경제ㆍ개혁 마인드를 갖춰야 하고, 이들 덕목 중 하나라도 결함이 있으면 구성원들에게 발목을 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여수대 김하준(金河準) 총장은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의 경우 총장에 대한 도덕적 기준이 엄격하다”면서 “도덕성 흠결은 곧바로 권위와 리더십의 추락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기준(李基俊) 서울대 총장이 최근 사외이사 겸직과 판공비 문제로 중도하차 하고, 김정배(金貞培) 고려대 총장이 학교측의 세금대납으로 홍역을 앓는 것도 총장 개인의 도덕성 문제와 무관치 않다.
이와 관련, 서울대 교수협의회 부회장인 김수행(金秀行ㆍ경제학) 교수는 “총장이 깨끗해야만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면서 “총장 선거에서 후보의 병역ㆍ재산현황 등 일정한 도덕적 기준에 대한 자료를 후보선정위원회에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총장이 대학의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소홀히 하는가 하면 구성원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이 모자라는 것도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서울대 이성원(李誠元ㆍ영문학) 교수는 “대학의 개혁을 이끌어가야 할 총장으로서는 교수ㆍ학생 등 구성원들에게 개혁의 취지와 방향을 설명하고 주지시키는 등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붐을 일으키고 있는 ‘CEO(최고경영자)형 총장의 부작용과 함께 대학 개혁을 둘러싼 총장과 구성원간의 노선ㆍ기대치 차이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김수행 교수는 “대다수 총장들은 온통 돈을 끌어오는 데 혈안이 돼 있는데 대학 본연의 기능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채 발전기금만 강조되다 보니 대학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현청(李鉉淸) 사무총장은 “요즘 대학 총장은 대체로 포용력과 행정업무능력 등을 갖추고 발전기금도 잘 끌어오는 등 ‘만능 해결사’ 역할을 강요받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교수ㆍ학생ㆍ교직원 등 대학 구성원 각자의 입장에서 일정한 기대치를 벗어날 경우 ‘무능한 총장’ ‘독선적 총장’으로 비판받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의 개혁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는 총장과 그 대상자인 교수들의 갈등은 대학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과도기적 현상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교수신문이 지난해 말 전국 130개 4년제 대학의 교수협의회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총장의 위상과 역할’ 설문조사에서 ‘총장의 업무수행 방식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36.1%가 ‘매우 불만’, 21.7%가 ‘대체로 불만’이라고 답했고, 만족한다는 긍정적 평가는 22.9%에 불과했다.
▼총장 충원방식도 문제
교수 사회에서는 총장직선제 등 총장선출 방식이 학내 갈등과 총장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대학 내에 만연해 있는 지연ㆍ학연에 의한 파벌형성을 조장하고, 급기야 ‘반대파’의 총장흔들기로 이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대의 한 총장은 “선거에서 떨어진 상대편은 (총장의) 옷 단추가 떨어졌는 지를 지켜볼 정도로 약점을 캐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심지어 일부 당선자는 자기사람 중심으로 보직을 나눠갖고 상대편을 무시하는 등 갈등과 반목이 10년 이상 지속될 정도”라고 귀띔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석좌교수인 렌리 로조프스키 박사의 ‘대학, 갈등과 선택’을 번역한 이형행(李亨行) 연세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대학 총장은 그 대학 출신이고 그 대학에서 재직해야 하며, 또 교수들이 직접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 당위로 인식되고 있어, 대학을 경쟁력있는 조직으로 이끌어 나갈 ‘선진형’ 총장 및 여성총장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호남대 윤형섭(尹亨燮) 총장은 총장직선제와 관련, 재임 중에 눈에 띄는 업적을 내놓아야 한다는 조바심도 총장의 위기를 자초한다고 말했다.
가족소풍을 나간 엄마가 제 걸음으로 가면 보폭이 짧은 아이는 넘어져 울게 되고 결국 부부싸움으로 비화하듯이, 총장도 업적에만 몰두하는 공명심을 버리고 구성원들의 손을 잡고 개혁을 함께 추진하려는 인내심과 겸허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40대·CEO형 외부인사 잇따라 등장
지난 9일 실시된 전북대 총장선거에서 이변이 연출됐다. 8명의 출마자 중 가장 젊은 두재균(杜在均ㆍ48ㆍ의대 산부인과) 교수가 3차 결선투표까지 가며 차기 총장으로 당선됐다. 전북대 역사상 최연소 총장이 탄생한 것이다.
두 교수는 “의사로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했는데 이제 발로 뛰는 CEO총장이 되겠다”면서 “전국은 물론 해외동포까지 참여하는 ‘발전기금 국제재단’을 만들어 600억원의 발전기금을 확보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학총장 자리에 젊은 40대와 CEO형 외부인사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총장현황 자료(5월9일 현재)에 따르면 서울대 등 총장이 유고 중인 3곳을 제외한 160개 4년제 대학(산업대ㆍ교대ㆍ방송대 제외) 중 40대 총장이 재임하는 대학은 9곳이다.
연령별로는 60대 총장이 88명(55%)로 가장 많고, 50대 총장도 44명(27.5%)이나 됐다. 또 70대는 17명(10.6%), 80대도 2명(1.25%)이다.
최연소 총장은 재임 4년째인 추계예대 임상혁(任常爀ㆍ41) 총장이고, 최고령 총장은 안양대 김영실(金英實ㆍ82) 총장이다.
출신 대학(학부기준)별로 서울대가 41명(25.6%))가 가장 많은 총장을 배출했으며, 고려대와 연세대는 각각 16, 13명이었다.
이어 전남대 출신이 5명, 한양대ㆍ이화여대는 각각 4명, 건국대ㆍ경희대ㆍ동국대ㆍ성균관대ㆍ중앙대는 각각 3명이다.
137명(85.6%)의 총장이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으며 모교 출신 총장은 18명(11.3%)이다. 여성 총장은 7명(4.4%)에 불과했다.
신극범(愼克範) 대전대총장은 세번째 대학에서 총장을 맡고 있으며, 윤형섭(尹亨燮) 호남대총장과 선우중호(鮮于仲皓) 명지대총장은 두번째 대학총장을 역임하고 있다.
정부부처 장ㆍ차관을 지냈거나 외부에서 영입된 총장도 급증하고 있다. 오 명(吳 明ㆍ전 건설교통부 장관) 아주대총장, 홍승용(洪承湧ㆍ전 해양수산부 차관) 인하대총장, 박재윤(朴在潤ㆍ전 통상산업부장관) 부산대총장, 정근모(鄭根謨ㆍ전 과학기술부장관) 호서대총장, 김하준(金河準ㆍ전 국립교육평가원장) 여수대총장, 김철수(金喆壽ㆍ전 상공부장관) 세종대총장, 이정무(李廷武ㆍ전 건설교통부장관) 한국체대총장, 홍 철(洪 哲ㆍ전 국토연구원장) 인천대총장, 박영식(朴煐植ㆍ전 교육부장관) 광운대총장, 이시영(李時榮ㆍ전 외무부차관) 전주대총장, 이 동(李 棟ㆍ전 서울부시장) 서울시립대총장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김성호기자
■총장의 하소연 "돈 끌어오랴…행사 참석하랴…2년만에 백발"
“외부에서 돈도 끌어와야 하고, ‘고집센’ 교수들 의견도 수렴해야 하고, 외부행사에도 참석해야 하고…. 총장자리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윤덕홍(尹德弘ㆍ55)) 대구대 총장은 “총장을 맡은 지 2년만에 백발이 돼버릴 정도로 총장직 수행은 격무”라고 말했다.
윤 총장의 말대로 대다수 대학총장은 발전기금 모금과 교수ㆍ학생ㆍ교직원 등 구성원간의 갈등조정을 가장 큰 고민거리로 꼽고 있다.
대검 중수부장 출신의 정성진(鄭城鎭ㆍ62) 국민대총장은 “동문 등을 상대로 기부금을 모으고 정부의 재정지원을 더 많이 받아내는 등 안정적 재원마련이 가장 힘들다”면서 “이런 노하우를 갖지 못한 총장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경희대 조정원(趙正源ㆍ55) 총장은 “교수들은 각자 자신의 학문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진 주체이기 때문에 일관된 의견수렴이 힘들다”면서 “대학의 차별화ㆍ특성화를 위해 한정된 재원을 효과적으로 투자하는 것도 난제”라고 말했다.
상당수 지방대 총장들은 신입생 유치와 졸업생의 취업난 해결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장의 업무를 가중시키는 각종 대외행사 참석 요구도 부담으로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총장은 “지역현안을 논의하는 총장ㆍ기관장 모임은 물론 자잘한 외부행사까지 참석할 경우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며 “총장 업무의 50%가량을 각종 대외행사에 빼앗기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의 D대총장은 “학교측과 학생들이 돈문제로 줄다리기를 할 때나 중간에 조정자로 나서야 할 때 정말 울고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김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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