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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은 내 가족"

입력
2002.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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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면 고깔모자를 쓰고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생일파티를 연다.땀내가 많이 나는 여름엔 산뜻한 시트러스향의 향수를 뿌리고 산들바람 부는 창가에 놓인 전용 스웨이드 쇼파에서 오수를 즐긴다.

연인이 생기면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도 올린다. 우리네 인생의 한 단면이냐고? 아니, 견공 세상의 이야기다.

애견이 엄연히 가족의 일원으로 대접받는 시대. 스타일리시한 삶을 즐기는 것은 더 이상 인간만의 특권이 아니다.

▼애견에게 스타일을 입혀라

영캐주얼 브랜드 ‘바닐라B’는 올 봄 애견용 옷과 일반 여성의류를 세트로 출시, 톡톡한 홍보효과를 누렸다.

다섯 종류로 나온 애견 옷은 8만~9만원대의 고가에도 불구하고 인기리에 판매됐고 여세를 몰아 여름용 의류에도 역시 세트개념의 애견용 옷을 내놓았다.

애견 꾸며주기가 유행하면서 털을 모양내 깎아주는 미용은 기본이고 애견용 의류브랜드들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한 달에 한 개꼴로 출시되고 있다고 할만큼 러시를 이루고 있다. ‘체스파니엘’ ‘디어독’ ‘퍼피아도쿄’ 등이 요즘 한창 잘 나가는 브랜드다.

이들 브랜드 의류는 통상 2만~3만원 하는 시장제품과 달리 평균 5만~8만원 하는 고가이지만 대리점 반품을 받아주지 않을 만큼 인기다.

제품도 레인코트에 니트셔츠, 캐시미어셔츠, 실크블라우스. 트렌치코트, 한복까지 각양각색이다.

애견용 전문 가구브랜드도 나왔다. ‘루이독’과 ‘퍼피 하우스’가 대표적이다.

루이독은 유럽풍의 디자이너 캐릭터 브랜드로 애견용 쇼파 하나에 33만원을 호가하는 데도 주문제작 신청이 쇄도할 정도로 인기다.

이외에 침대, 쿠션 등 ‘강아지의 주거에 관한 모든 것’을 제작한다.

향수와 음반도 애견 전용 브랜드가 나왔다.

강아지 전용 향수브랜드 ‘오 마이 독’은 ‘오 마이 캐츠’라는 아류작이 나올 정도로 주목받았고 강아지가 들을 수 있는 중저음파 영역의 클래식을 편곡한 음반도 출시돼 화제를 모았다.

애견족들에게 애견의 스타일은 곧 자신의 스타일과 취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예전의 동물병원이나 미용실 한 구석에 마련된 구색상품대에서 용품을 구매하던 패턴이 최근에 브랜드화한 애견용품 전문점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애견용품 전문점 ‘퍼펫’ ‘러블리하우스’ ‘퍼피즌’ ‘나라’ ‘닥터펫’ 등은 애견족들이 마음에 드는 옷을 애견에게 직접 입혀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피팅공간을 마련하는 등 웬만한 성인용 패션숍 못지않은 편의시설과 인테리어를 갖춘 게 특징이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퍼펫 2호점 임영지 점장은 “요즘은 강아지를 멋지게 꾸미는 것이 자신의 신분이나 취향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일수록 브랜드를 중시하고 개를 꾸미는데 돈을 아끼지 않으며 이왕이면 깔끔한 인테리어를 갖춘 전문용품점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애견- 취미가 아니라 삶의 방식

물론 애견 꾸미기의 정도는 개인차가 크다. ‘루이독’ 설립자이면서 자신도 개 한마리와 동고동락하는 백별아씨는 “한 계절에 한벌이나 사줄까 말까다.

가능하면 자유롭게 키우고 싶어서 여름엔 대충 벗겨서 키우고 겨울엔 스웨터를 입히는 정도”라고 말한다.

반면 강남의 주부인 P씨는 애견의류만 200벌, 그 중 꼭 옷걸이에 걸어서 보관해야 할 고가 의류도 100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과연 애견은 어떤 존재인가.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미리(24)씨는 매년 8월 22일이면 ‘애기’ 라고 부르는 애견 ‘꽈리’를 위해 생일파티를 연다.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네 살짜리 애견을 기르기가 쉽지 않지만 “모든 생활을 ‘애기’위주로 한다”고 할 정도로 정성이 대단하다.

생일 날이면 미리 파티용품 판매점에 들러 고깔모자와 냅킨 접시 풍선 과자 등을 사고 애견카페에 좌석예약을 해 조촐한 파티를 연다.

올해 생일엔 닭가슴살로 만든 애견용 생일케이크도 미리 주문해놓을 예정이다.

얼마 전에는 애견용 침대를 구입해서 꽈리는 침대에, 자신은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함께 잔다. 꽈리침대 높이가 낮아서 껴안고 자는 것 같다.

그는 “처음엔 ‘애기’를 재롱둥이, 한때 재미있게 키우는 동물 정도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한달 양육비가 15만~20만원 정도 들지만 아깝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애견은 성격은 물론 인간관계도 변화시킨다. 대학생 임정은(22)씨는 15개월된 다롱이를 키우면서 “책임감이 강해진 걸 느낀다”고 말한다.

다롱이는 얼마 전 애견동호회 정기모임에서 만난 화평이라는 친구와 정식 결혼식을 올린 유부녀 개.

그러나 똥오줌 치우고 목욕시키고 먹이주는 모든 보살핌이 필요한 것은 여느 개나 마찬가지이다.

임씨는 “다롱이와 함께 살면서 알게 된 애견족 친구들하고는 자주 만나고 있다. 그들과는 점점 더 친해지고 그전에 친구들과는 연락이 뜸해졌다. 그러나 지금이 더 즐겁다”고 말한다.

인테리어 자재회사에 다니는 전영미(39)씨는 최근 이사할 집을 수리하면서 개 전용 방을 따로 냈다.

키우고 있는 애견 11마리가 종류별로 나뉘어서 쉴 수 있도록 제일 전망이 좋은 발코니 딸린 방을 개조 중이다.

전씨는 “갈수록 개인주의가 심해지는 세상에서 개만이 유일하게 사랑을 배반하지 않는 동물이다. 끊임없는 애정 표현과 절대적 충성심으로 맺어진 끈끈한 우정은 개 수발의 어려움을 깨끗이 잊게 해준다”고 말했다.

전씨는 남편과 애를 갖지않기로 합의한 상태다. 패션회사에 근무하던 남편은 최근에 수의학과 공부를 새로 시작했다.

가족의 일원이며 친구인 관계에서 개를 위해 옷과 먹이를 골라주고 건강을 체크해주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버려지고 굶주리는 아이들도 많은데 고작 개 따위에게 온갖 정성을 들이느냐는 비난의 소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씨는 “직접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개가 주는 기쁨을 절대 모른다”며 “나의 보호와 사랑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나의 존재가치를 말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루이독' 백별아씨

“애견이 제 인생행로를 바꿨습니다.”

애견용 가구브랜드 ‘루이독’을 이끌고 있는 백별아(29)씨는 지난해 이맘 때만해도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다.

운명을 바꾼 것은 남자친구가 선물한 애견 ‘위니’의 생일파티.

위니의 생일선물로 직접 제작한 쇼파가 파티 당일 친지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끌면서 주문제작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고 결국 다니던 인테리어 회사를 그만두고 애견용 가구디자이너로 전업했다.

“개를 집안에서 키우다보면 가장 큰 고민이 어디다 재워야 할지, 가족들이 쓰는 가구를 못쓰게 만들지는 않을지 그런거잖아요. 애견용 가구는 그런 불안을 없애줘요. 또 강아지들에게도 좀 더 편안한 쉴 공간을 제공하구요. 애견족으로서 이것도 참 의미있는 일이구나 싶었죠.”

애견 가구를 제작하면서 백씨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개의 특성 파악이다.

성격에 따라 구석에 들어가 자기를 좋아하는 개도 있고 또아리를 틀고 자거나 사지를 쭉 뻗고 자는 개도 있다.

잠자는 습성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 개들이 촉감에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해 벨벳이나 스웨이드, 가죽, 100% 순면 등 소재의 다양화에도 신경을 썼다.

또 모든 나무 프레임에는 방수처리를 해서 개오줌으로 인한 뒤틀림을 방지했다.

모든 시제품들은 동물병원에 제일 먼저 가져다 놓고 1~2세짜리 ‘아기’들이 사용해 보도록 하는데 “얼마나 악착같이 물어뜯고 떼어내는지 가구의 견고성 테스트를 하는 데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출시된 지 1년이 채 안됐지만 루이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에서 이미 좋은 평가를 받고있고 미국의 애견잡지 ‘애니멀페어’에서도 자료요청을 받는 등 애견가구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는 홈페이지(www.louisdog.com)를 통해 버려진 강아지를 위한 자선운동을 벌이는 것이 꿈. “자신의 개를 사랑하는 만큼 주변의 불우한 이웃들에게도 관심과 애정을 쏟는 애견문화를 정착시키는데 힘쓰고 싶다”고 말한다.

백씨는 미국 뉴욕의 예술학교 SVA(School of Visual Art)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했다.

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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