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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방송인 이금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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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방송인 이금희씨

입력
2002.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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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가 되기 전이었다. KBS TV의 아침마당과 가요산책을 매일 생방송하고 일요일에는 국악한마당을 녹화했다. 그 밖에 두 개 프로를 더 진행하고 저녁에 더빙까지 할 때였다. 아는 이가 또 하나를 부탁하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아침마당에 패널로 출연 중인 나에게 물었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같을 것이다. 당연히 거절해야 할 사안. 그러나 그 거절이 힘든 사람이 이금희다.≫사람 좋은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늘 생글거리고. 기자와 한 인터뷰약속을 5분 늦게 도착한다고 전화하는 사람. 신입사원 때는 방송국 복도 중앙으로 못 걷고 한쪽으로 비켜서 걸었다. 쓸데없이 책상 청소한다고 여자 선배에게 꾸지람도 들었다.

한참 어린 후배 작가에게도 마찬가지로 잘한다. 주변을 배려하고 늘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남에게 주려고 노력한다.

다섯자매 중 넷째. 몸이 약해 죽을 뻔한 고비를 몇 차례 넘겼다. 어머니는 넷째에 더 신경쓰느라 막내는 분유로 키울 수 밖에 없었다.

그 막내가 언니를 더 잘 챙겨준다. 그리고 먼저 시집간다. 엄마, 친구 등 아무에게나 잘 안기고 따르는 아이.

주위 사람들은 아이가 예쁘다고 집안에 있는 그의 사진을 다 가져가 버릴 정도이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은 어릴 적부터 탁월했다.

공무원으로 집에 잘 안 계신 아버지. 말 수도 적으셨다. 대신 밤새 부업을 하며 쉬는 모습을 보인 적 없는 어머니만 우세하다. 딸이 하겠다는 것을 반대한 적이 없다. 드러내놓고 자랑스러워 하지도 않는다.

약속은 꼭 지키는 분.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공부 잘하면 100권 짜리 동화전집을 사준다는 약속을 한다.

딸은 1등을 하고 어머니는 지켰다. 노력의 대가가 반드시 있다는 무의식이 심어진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정신적 배경이 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 따라 노래자랑대회를 구경하러 방송국에 간다. 친구는 떨어졌지만 진행하는 언니의 예쁜 모습을 보고 아나운서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고야 만다. 미래에 대한 주저가 없다.

중ㆍ고등학교에서는 방송반 활동. 그리고 방송국이 있는지 여부가 대학진로 결정에서도 중요한 조건이 된다. 방송만 생각했다. 그리고 방송을 한다.

아니라고 하지만 글을 아주 잘 쓴다.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글이 실려있을 정도다. ‘나는 튀고 싶지 않다‘는 교정까지 직접 본 책이다.

글 솜씨뿐 아니라 내용도 좋다. 자연스럽게 읽힌다. 진솔하게 자신을 묘사하고 정확히 규정했다. 생활에서도 도무지 꾸미는 것이 없다.

방송은 자연스럽고 솔직해야 오래간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튀는 다른 방송인보다 앞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학창시절, 새 학년에 올라가면 금세 친구를 사귀었다. 지난해 친했던 아이들도 그를 잊지 못해 자주 찾아온다.

다른 아이들이 새 친구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 이해되지 못할 정도였다. 본인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옛 친구들과는 관계가 유지되고, 새로운 친구들도 끊임없이 만들어지게 된다. 친구 수는 늘어가고 일도 많아진다. 약속 연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불평 없는 친구들.

중학교 2학년까지 키가 작았다. 키 큰 육상선수 친구가 불쑥 전화해 나름대로 키 큰 사람의 힘든 점을 말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다. 성적이 안 나와 울고 있는데 친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장갑을 떠 온 적이 있다.

방송대상을 탈 때 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스카프를 사 준 동창. 약속을 잘 못 지키는데도 미숫가루를 보내준 친구.

좋아하는 남자형은 다정다감하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보다는 함께 밥 먹고 책 볼 수 있는 소박한 삶의 동반자를 원한다. 그런데 미스테리 중 하나. 그토록 대인관계를 잘하는 사람이 연애에 서툴다.

만나는 과정은 나무랄 때 없다. 2년동안 지속된 연애기간. 하지만 상대의 마음이 식은 걸 눈치 못 챈다. 헤어질 때 아무 말도 못한다. 정서적으로는 못 받아들이면서…. 그리고 1년을 방황했다.

이금희 식 대인관계에 그 답이 있다. 누구에게나 잘한다. 새로운 사람과 쉽게 친해진다. 과거의 사람도 포기하지 않는다.

나이들어 만나면 깊은 관계로 만들기 어렵다는 말도 그녀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면서 자잘한 약속도 거절 못한다. 상가(喪家)는 되도록 가 보려 노력한다. 자기주장도 많지 않다.

감성적인 더빙을 그녀만큼 잘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의 마음을 잘 읽기 때문이다. 대중의 마음은 휘어잡고 광범위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나 남자친구와 같은 친밀한 대인관계는 성공적이지 못하다. 친구들과도 친밀도에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남자 친구는 자신도 모르는 새 사이가 멀어지는 반면, 여자 친구는 그만큼 친하다는 사실을 역으로 자각하지 못한다. 친밀도의 거리가 일정 수준 이내가 되면 다른 양상으로 변하는지도 모른다.

일과 사람 모두 거절을 못하는 것 같지만 아닐 수도 있다. 실제 일의 유지와 사람 관리에 압박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끊임없이 처리해도 끝이 안 보인다. 쉴 수 없다. 주어진 일은 모두 해내야만 하고 마주치는 사람마다 일정 정도 이상의 친밀도를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 정서적 안정이 된다.

순간에 집중했다.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았다. 많은 일을 해 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점점 더 피로가 축적된다. 지금 포화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막아야 한다. 해야만 한다는 무의식의 요구는 과거의 유산이다. 이미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이제는 이완이 필요하다. 그래야 더 크게 걸을 수 있다.

●약력

▲1966년 서울 출생

▲1988년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9년 KBS 공채 16기 아나운서 입사

▲1989~1999 KBS ‘6시 내고향’ ‘TV는 사랑을 싣고’ ‘사랑의 리퀘스트’ 등 다수 진행

▲2000년 프리랜서 선언

▲숙명여대 언론홍보학과 겸임교수. 현재 KBS ‘아침마당’, 2FM ‘이금희의 가요산책’진행, ‘인간극장’ ‘TV동화 행복한 세상’ 내레이션

▲1998년 한국아나운서협회 올해의 아나운서상, 1999년 한국방송대상 아나운서상, 2000년 한국연예예술인협회 아나운서상

/김병후의 여성탐구

■지인들이 보는 이금희

옆집 아주머니와 수다를 떠는 듯한 수더분한 말투, 2000년 남북이산가족 상봉장에서 무릎을 꿇어 몸을 낮추고 이산가족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던 진행자 이금희. 브라운관에서 그를 상징하는 단어는 단연 ‘감성’과 ‘푸근함’이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이금희와 함께 KBS‘아침마당’을 진행하는 방송인 이상벽씨는 “방송과 사적인 감정을 명확히 구분할 줄 아는 프로페셔널”이라고 말한다. “결혼을 안했다든지, 체격이 크다든지 하는 인간적인 약점들을 방송을 하다 보면 누군가 짓궂게 건드릴 때도 있다. 하지만 방송의 효율성을 위해서 이를 기꺼이 감수하는 걸 보면 놀랍게 느껴진다”는 게 그의 평가다.

1992년 KBS ‘6시 내고향’의 작가와 진행자로서 만난 10년지기 이미혜씨(독립프로덕션 ‘허브넷’ 작가)도 “지혜롭고 영민한 사람이다.

내가 5년 선배지만 마치 후배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미혼이면서도 가정생활이나 복잡다단한 인생사 고민에 대해 아주 노련하고 합리적인 조언을 해준다. 공부를 많이 하고, 감수성이 뛰어나 남의 경험을 자기 것처럼 잘 소화한다. 몇 년 전 출연자의 말 한 마디도 고스란히 기억해 써먹는다.

작은 인간관계까지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함께 일하는 나이 어린 작가들에게 간식으로 빵 한 봉지라도 꼭 챙겨주고, 친구에게도 정작 본인은 잊고 있는 생일이나 기념일까지 챙겨 책상에 떡이나 꽃바구니를 올려놓는 등의 행동은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이다.

이 씨 또한 “싫어하는 인간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모든 사람에게 두루 잘 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스스로 지내기에는 피곤하기도 할 것”이라고 말한다.

밤을 새우다시피 강의(숙대 겸임교수)를 준비하고, 끊임없는 독서로 자신을 재충전하는 등 자기관리가 철저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다. 바로 튼실한 체격이다. 이미혜씨는 “다이어트나 운동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먹을 때 보면 그렇게 복스러울 수 없다. 그 즐거움과 행복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나”라고 말한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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