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일(12월 19일) 까지 남은 7개월은 너무 나 길다.단일언어ㆍ 단일민족에다 일일 생활권인 이 나라에서 대통령 선거전을 7개월이나 계속 한다는 것은 낭비적 요소가 많다.
게다가 이 나라 민심과 여론은 돌발사태가 생길 때 마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 격차가 좋은 예이다. 불과 한달 전 만 해도 20% 포인트 이상까지 벌어졌으나, 최근 들어서는 오차 범위내에서 각축하고 있다.
7개월 동안 몇번의 엎치락 뒤치락이 있을지 모를 일이고, 무슨 변수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언제 어떤 형태로 제3 또는 제4의 후보가 나타날지, 정계개편과 정치판의 이합집산은 있을지 없을지, 후보간 합종연횡이 또 다시 시도 될는지, 대외부분과 경제문제등에서 외생변수 가능성은 어느정도 인지… .
대선 가도에 놓인 불확실성이 너무나 많다. 흔히들 대통령은 하늘이 낸다고 하는데, 하느님도 무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는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 게임, 그리고 회생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제기조의 유지와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의 타개 등 할 일이 쌓여있다.
무엇 때문에 대통령을 뽑는 데 이토록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보다 땅 덩어리가 90배 이상 크고 인구가 여섯배 가까이 많은 미국도 대통령 후보를 선거가 있는 해 여름에 가서야 확정한다.
미국 선거는 11월 첫번째 월요일 다음 화요일에 있으니까, 공식 선거기간은 길어야 3개월 안팎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통령선거에 사회의 많은 부분들이 사활을 걸고 덤비지만 미국은 그렇지가 않다. 사활을 건 7개월과 그렇지 않은 3개월은 산술적 비교 이상의 의미가 있다.
노무현 씨는 지난달 27일, 이회창 씨는 9일 각각 민주당과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됐다. 하지만 양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실상 선거체제에 들어가 있다.
게다가 이번 대선은 두 차례의 예선전을 치룬 뒤 본선을 맞는다. 6월 13일의 지방자치 선거와 8월 8일에 있을 재ㆍ보궐선거가 그것이다.
양당이 두 선거에서 이상 과열을 보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치라도 밀리면 대선에서 불리하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지방선거는 지방의 일꾼을 뽑는 선거라야 하고, 재ㆍ보궐선거는 빈의석을 채우는 수준이면 족하다.
대통령 선거에 들어갈 놀라운 규모의 자금은 7개월 동안에 감내해야 할 헤아리기 힘든 기회비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선거논리 때문에 국가의 주요 결정이 미뤄지고, 임기 말을 맞은 현직 대통령이 엄정 중립이라는 틀에 갇혀 힘의 공백 상태에 빠지고, 폭로전과 상호비방 등 후보간 네거티브 캠페인이 가져올 사회갈등 양상의 증폭 등 알게 모르게 치러야 할 간접비용이 부지기수다.
싫든 좋든 간에 7개월 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를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국민과 유권자들이 하기에 따라서는, 길기만 한 대선기간의 폐단을 최소화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눈을 부릅뜨고 깨어 있어야 한다.
수시로 있을 여론조사를 통해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무책임한 흑색선전과 지역감정을 악용하려는 구태 등은 확실하게 혼을 내 줘야 한다.
후보 만큼 유권자를 의식하는 정치인은 없다. 한명 한명이 표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때 아니면 후보에게 쓴 소리를 할 기회도 없다.
건전한 정책 대결을 격려하고, 표를 위해서라면 청탁을 가리지 않는 부분별한 선거전략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려야 한다.
정치수준은 그 나라 국민수준과 정확히 비례한다고 했다. 낙후된 우리정치의 책임은 정치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유별나게 긴 이번 대선은 우리 모두의 각성과 분별을 어느때 보다 요구하고 있다.
이병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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