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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정직한 정치가의 앞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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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정직한 정치가의 앞날

입력
2002.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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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를 등장시킨 비유가 퍽 냉소적이었다. 외국 추리소설의 한 장면이다.탐정이 범행의 자취를 쫓아 지하실로 내려간다. 전등이 켜 있지 않은 지하실은 공포감을 자아낼 정도로 어둡다. 그 장면은 한 마디 묘사에 통렬한 정치적 야유로 바뀐다.

부패와 비리의 행진 속에 이런 표현을 민망해 할 한국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의식에는 이제 정치적 냉소주의와 허무주의가 무성하다.

그러나 이는 정직성에 대한 국민적 희구가 목마르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치인 신뢰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효율성이 아니라 품위라고 한다.

영국 학자 월터 배젓의 지적이다. 정치인의 이미지는 부정부패와 표리부동하고 상스러운 언행으로 계속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사 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하던 시절, YS와 DJ의 가장 강력하고 호소력 있는 명분은 도덕성이었다. 그들은 쿠데타로 집권한 군인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자부하고 있었고, 그 도덕성의 깃발 아래 많은 지지자가 모여들었다.

그러나 YS에 이어 DJ도 집권 말기에 도덕성이라는 자산을 거의 다 잃고 있다. 경제회복과 햇볕정책,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이룬 DJ의 정치적 자산을 아들이 다 탕진하는 것을 보면 딱하다.

5년 전 YS가 아들을 구속시킨 것은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그에게는 어떤 정치적 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도덕성은 힘의 원천이다. DJ에게도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미국 정치인도 도덕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1994년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상ㆍ하원 의원이 정직성과 윤리성에서 받은 점수는 중고차 판매원보다는 높고 변호사보다는 낮았다.

전문직 가운데 꼴찌에 가까운 점수였다. 이런 혹평에도 정치에 대한 환멸과 정직한 정치가에의 갈망이 함께 묻어 있다.

정직성은 정치인의 신뢰와 직결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게는 자질과 능력면에서 회의적인 평가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의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도 그의 정치적 성실성만은 존경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이념적 일관성을 유지했으며,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정책보다는 인간적으로 믿을 만하다는 인상이 그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주었다.

대통령 후보나 큰 정치가로 입신하려는 야망가는 정직과 도덕성부터 갖춰야 한다. 말을 쉽게 바꿔서도 안 된다.

근래 노무현씨 바람은 그가 YS, DJ와는 또 다른 박자로 북을 두드렸기 때문에 참신해 보였고 지지를 받은 현상이다. 그의 지지도가 하락한 것은 그 후 다른 정치인들처럼 말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회창씨도 아들 병역문제와 빌라 문제로 '대쪽'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 당했다. 신뢰 얻기에는 일관성 있는 신념과 철학이 필요하다.

지자체 단체장들도 부정부패로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 구속되는 정치인들의 당당한 표정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하다가, 나중에는 화나게 한다.

그들의 표정은 도덕적 불감증과 정치적 불신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를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미국 정치인의 회고가 있다.

지자체 단체장과 대통령의 선거가 있는 올해가 한국에서 부정부패를 추방하는 마니폴리테(깨끗한 손)의 원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선거 이전에 지금은, 깨끗한 정치를 담보하기 위한 장치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시민단체도 나서서 '정직한 정치인의 앞날이 캄캄하다'는 수사가 외국 작가의 한낱 역설임을 보여주자. 정직한 정치인만 뽑는다면 정치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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