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 사태와 같은 중요한 역사적 논쟁거리는 지나치게 많은 해석을 낳는 경향이 있다.어떤 사람들은 엔론의 파산에 대해 이사회의 실수를 탓하고 다른 사람들은 회사의 경영을 문제 삼는다. 방만한 법적 규제나 주주들의 태만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인은 회계사, 증권 애널리스트 등 이른바 기업의 감시자들이 복잡한 재무 정보를 평가하고 검증하고 걸러내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엔론이 왜 비리와 스캔들에 휘말렸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회사 안팎의 감시자들의 왜 그것을 방치했는가가 관건이다.
엔론의 회계법인인 아더 앤더슨은 최근 형사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미국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도 비리 연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다른 감시자들도 전 재계에 걸친 도덕적 해의를 미리 지적하고 공개하지 못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엔론 사태와 관련한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회계법인, 증권사 등 감시자들이 수십 년 동안 쌓은 명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통제한다는 이론이 틀렸음을 시사한다.
1990년대 초반 도입된 이 이론에 따르면 감시자들은 수많은 고객을 상대하기 때문에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해 명성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결국 실증적으로는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90년대 회계 업무의 신뢰도는 점점 떨어졌다.
90년부터 97년까지 기업의 수익 수정 고시 사례는 연 평균 49 건이었다. 98년에는 91건, 99년에는 150건, 2000년에 들어서는 156건으로 급증했다.
이것이 회계 법인들의 비리를 증명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고객의 부정한 요구에 휘말리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90년대 들어 증권 애널리스트들도 비판적 시각을 상실했다.
90년에 주식 매입과 매도 추천 비율이 1대1이었던 데 반해 2000년에는 100대1로 뛰어 올랐다는 통계는 증권사들이 투자자들을 오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 이런 경향이 생겨났을까. 우선 부실 회계 관행에 대한 감독 및 규제의 미비를 꼽을 수 있다.
대법원은 기업 회계 감사 담당자의 부정이나 실수에 대해 고소하는 절차를 어렵게 만들었고 의회는 회계법인의 책임의 한계를 축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게다가 이들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컨설팅 업무를 병행해 부실 회계를 조장한 셈이 됐다.
다른 이유로는 애널리스트들의 도덕적 해이를 들 수 있다. 엔론 사태는 90년대 후반 시장을 지배했던 거품 현상의 결과다.
신중한 애널리스트들은 주관적인 기준으로 주식 평가를 부풀리고 과장된 투자 보고서를 내는 애널리스트의 목소리에 눌려 설 자리를 잃었다.
그 결과 투자 가치가 없는 주식에 대해 투자등급을 부여하는 등의 투자자 오도가 판을 치게 된 것이다.
재계의 부실과 부도덕성이 제도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 중 어느 것으로 비롯된 것인 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개혁을 위해 내릴 처방을 선택하는 가이드라인이 되기 때문이다. 심리적 요인은 경제인들의 자정을 요구하고 제도적 요인은 법적인 절차에 의해 수정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90년대에 시작된 회계사와 애널리스트들의 도덕적 해이는 이들의 복잡한 이익의 충돌과 깊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자정보다는 제도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애널리스트들은 마케팅을 위해 그들의 본연의 임무인 리서치를 소솔히 했고 반대로 회계사들은 컨설팅을 병행하느라 감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여기서 엔론, 앤더슨, 메릴린치의 스캔들의 원인 및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직종에서든 자신의 이익을 증대하려는 의지와 객관성이 제대로 결합할 수 없다는 것이 중요한 교훈이다.
/존 C 코피 주니어 미국 컬럼비아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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