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한국일보 1면을 장식한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 박근혜(朴槿惠) 의원과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기념사진은 애증으로 점철된 우리 분단사를 복잡하게 투영했다.1960, 70년대 결사적으로 체제 경쟁을 벌였던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딸과 아들이 어느새 아버지 연배가 돼 나란히 선 모습은 과거로의 여행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외신은 '남북 독재자 자녀의 회동'이라고 냉소를 섞어 보도하기도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껴야 했다.
아버지의 유훈(遺勳)을 발판으로 각각 남북에서 정치적 입지를 구축한 두 사람의 심사도 복잡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박 의원에게 전용기를 보내줄 정도로 환대한 것은 아버지 김 주석과의 대결에서 판정승했으나 측근의 손에 숨진 박 대통령의 혈육에 대한 궁금증과 연민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경제적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68년 1월21일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해서도 미안하다고 밝혔다.
74년 조총련계 문세광의 총탄에 어머니 육영수(陸英修) 여사를 잃은 박 의원의 가슴속 응어리도 조금은 풀렸을 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아버지 대(代)의 유일한 공동 작품인 7ㆍ4 공동성명을 화제에 올리며 손을 맞잡았다. 이 성명이 밀알이 되어 6ㆍ15 공동선언이 성사됐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고, 힘을 합쳐 평화통일을 이루자고도 약속했다.
박 의원은 정확히 30년 전 당시 박 대통령의 특사였던 이후락(李厚洛) 중앙정보부장이 김 주석과 공동성명에 합의한 것처럼 많은 현안에 대해 긍정적 언질을 받아냈다. 그리고는 이 부장처럼 판문점을 통해 돌아왔다.
그러나 박 의원이 들고 온 보따리가 공동성명처럼 분명한 성과로 기록될 지는 미지수다. 두 사람의 남달랐을 감회와는 별도로 정치인으로서 두 사람이 맞은 환경은 아버지 대 당시보다 더욱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동준 기자 d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