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은(69), 김지하(61)씨가 금주 출간되는 문예지 여름호에 각각 열 편이 넘는 시를 발표했다.고은씨는 특히 한국현대사를 통해 시인의 길을 탐색한 시 ‘자화상’을 발표해 주목된다. 그가 최근 비판한 미당 서정주의 시 ‘자화상’과 같은 제목이다.
김지하씨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소박한 일상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작품을 오랜만에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 활동을 재개했다.
고은씨는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11편의 시를 발표했다. 무엇보다 관심이 가는 작품은 ‘자화상’.
그는 지난해 미당 서정주를 통렬하게 비판한 ‘미당 담론’을 발표했었다.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되는 미당의 시 ‘자화상’에 대해 그는 “세상에 대한 수치가 결여됐다”면서 맹렬하게 공격했다.
고은씨의 ‘자화상’은 이렇게 시작한다.‘나는 그 전쟁을 노래하였습니다…대일본제국/ 천황폐하의 군대가 이겼노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소위 대동아전쟁/ 식민지 백성의 아들은/ 황공하옵게도/ 천황폐하의 아들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아직도 내 얼굴은 그 시대의 종노릇 뇌경색으로부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미당의 훼절을 연상시키는 첫 두 연이다. 그는 이어 ‘북쪽에서 해방전쟁을 노래’하고, ‘베트남 파견의 국군을 또 미군을 노래’해야 했다면서 현대사에 대해 탄식한다.
고씨는 “과거에 대한 성찰을 통해 시인이 가야 할 길을 형상화하고 싶었다”면서 “미당을 포함해 ‘문학사적 자화상’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밖에도 ‘신록’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과 광주항쟁,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분쟁에서의 학살을 노래한다. ‘그’란 작품에서는 미국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는/ 1950년 여름부터 3년 동안/ 한국전쟁에 왔다/ 가로대 고립 의무가 아니라/ 절대권리였다…그는/ 1961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에 건너갔다…바쁘다/ 바쁘다’
평화의 이름으로 지상의 전쟁터마다 끼어들었던 미국이 9ㆍ11 테러를 당하자 시인은 ‘이 무슨 청천벽력의 모독인가’라고 조소한다.
김지하씨가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발표한 시 13편은 그의 삶을 맑게 비춘다.
김씨는 한 달에 한 번 절에 오르고, 하루에 두 시간 난을 친다.
율려(律呂)운동을 하는 그는 ‘하늘엔/ 흰 반달// 땅에는 화엄의 율려’(‘화엄 율려’에서)라고 차분하게 노래한다.
자신이 그린 난초를 ‘전시해 놓고 돌아보니/ 아연 평범’(‘묵란 전후’에서)며 한탄한다. 그는 최근 주역을 공부하고 있다. ‘아아/ 艮(간)이여!// 산 안에서 달이/ 또하나의 달이/ 배로 태어난다// 그것은 산/ 산 아래 또 산’이라는 구절이 담긴 시 ‘만월당 풍경’에는 ‘간(艮)’에 관한 각주를 달아놓았다.
주역에서 ‘간’은 산을 의미한다. 산 위에 산이 있는 괘로 동방 한국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제 생명ㆍ평화ㆍ조화를 구원의 동앗줄로 삼은 김씨의 언어에는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말도 있다. 그의 생각이 그대로 옮겨진 시는 투명하다.
‘어수룩하게!…누가 보아도/ 나도 쓸 수 있겠다 싶은 그런 시를!’그는 ‘부지런히 자주!’(‘변괴’에서) 쓰겠다고 다짐한다. ‘잘 되고 못 되고는 불문에 부치고/ 중요한 건 자꾸 쓰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