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에서 일본의 존재는 우리에게 아주 특별하다. 공동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16강에 진출하면 축제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고조되겠지만 양국의 전력상 이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일본은 국내외 여론조사에서 16강 진출 가능성이 한국보다 높게 나타나는 등 우리보다 한수 위라는 평가다. 1980년대를 풍미한 브라질의 축구영웅 소크라테스가 “일본이 월드컵에서 4강을 달성해도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단순한 외교적 언사에 그치지 않는다.
그만큼 일본축구는 큰 일을 저지를 범상치 않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 벨기에 러시아 튀니지와 함께 H조에 속한 편성도 유리하다.
일본축구의 힘은 필리페 트루시에(52) 감독 체제 이후 4년 동안 담금질해 온 조직력에서 나온다. 트루시에 감독은 40여명의 선수로 인재풀을 구성해 일관성 있는 훈련을 반복해왔다. 이제는 주전 3,4명이 교체돼도 전혀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로 조직력이 탄탄하다.
트루시에는 최종엔트리가 발표될 17일까지는 아키히토 천황도 명단을 알 수 없다고 말해왔지만 윤곽은 드러나 있다. 베스트 11은 일찌감치 확정됐고 새 얼굴은 공격수 스즈키 다카유키(25ㆍ가시마) 정도라는 분석도 있다.
공격수 4명, 미드필더 11명, 수비수 5명, 골키퍼 3명으로 23명의 엔트리를 짜겠다는 그의 구상에서 보듯 일본축구는 허리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3-5-2 시스템을 완성한 트루시에는 미드필더와 관련해 ‘얼마나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느냐’에 비중을 두고 옥석을 가려왔다. 다기능 플레이를 강조하는 거스 히딩크 한국대표팀 감독과 일맥상통한다.
일본은 바로 미드필더 5명이 조직력을 책임지고 있다. 플레이메이커 나카타 히데토시(25ㆍ파르마)와
‘사커키드’ 오노 신지(폐예노르트) 등 전원이 엄청난 체력을 앞세워 압박을 가한다. 특히 나카타는 ‘일본 축구는 나카타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게 장점이자 약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팀의 승부를 좌우할 핵이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유연한 볼컨트롤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패싱력을 지닌 오노도 경기를 읽는 눈이 탁월하다. 이들이 보여주는 패스와 공격진의 2선침투는 아시아 수준을 넘었다는 평이다.
또 지난해부터 완전히 플랫(일자형) 3백으로 바뀐 수비라인은 공격을 받을 때면 윙백 2명이 내려와 5백이 되는 등 철벽을 자랑한다. 나카타 등이 압박하는 순간 일사분란하게 오프사이드 트랩을 펼쳐 역습에 대비하는 부분전술에도 능하다.
2일 온두라스에게 3골이나 내주며 3-3으로 비긴 데 이어 8일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에 0-1로 패하면서 수비불안에 대한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과감한 몸싸움과 생동감 넘치는 패스워크, 투지에 찬 플레이 등은 일본축구가 한단계 성숙해졌음을 입증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다만 공격의 핵인 다카하라 나오히로(23ㆍ주빌로 이와타)와 니시자와 아키노리(26ㆍ세레소 오사카)가 부상에 시달려 골결정력 부족과 함께 트루시에에게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종수기자
jslee@hk.co.kr
■"日 축구발전 뒤엔 외국인감독 3명 있었네"
축구강국 일본의 탄생에는 외국인지도자 3명의 선진축구 전수가 밑거름이 됐다.
데트마르 크라머(76ㆍ독일)는 동네축구 수준이던 1960년대 일본 축구계에 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은인이다. 그는 국제축구연맹(FIFA) 순회코치 자격으로 64년 도쿄올림픽 일본대표팀을 지도한 데 이어 68년 멕시코 올림픽 때는 일본팀을 전담, 동메달을 따냈다.
91년 한국올림픽대표팀도 지도했던 명조련사 크라머는 ‘골을 많이 넣는 게 축구의 기본이고 이를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평범한 진리와 함께 유소년 축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일본축구 저변확대에도 기여했다.
크라머가 일본 축구의 대강을 완성했다면 한스 오프트(55ㆍ네덜란드)는 부분전술을 한단계 발전시킨 지도자였다. 92년 4월 감독을 맡은 오프트는 단조로운 정석축구에서 벗어나 응용력을 높였다.
또 플레이메이커를 중용하는 축구를 도입해 나나미 히로시, 나카타 히데토시 같은 재능있는 선수들이 대거 등장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일본이 92년 베이징 다이너스티컵 결승서 한국을 꺾고 우승한 데는 브라질서 귀화한 걸출한 플레이메이커 라모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필리페 트루시에는 선배들이 구축한 부분전술과 강한 체력 등을 바탕으로 팀워크와 팀전술을 완성했다.
특히 아시아에서 최초로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을 쓰는 3-5-2 시스템 도입에 성공, 한국에도 영향을 주었다. 수비를 집중 지도한 노력은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의 결실을 일궜다. 역습받을 때도 최대 7명이 가세하는 등 강한 압박은 일본의 가장 큰 무기로 떠올랐다.
박석원기자
■트루시에 감독…용인술등 히딩크 닮은 꼴
필리페 트루시에(사진) 감독은 거스 히딩크 한국대표팀 감독과 많은 면에서 닮은 꼴이다.
월드컵사상 첫 16강 진출을 노리는 양국의 사령탑인데다 선수 때보다 지도자로서 축구인생을 더 활짝 꽃피웠다. 28세에 일찌감치 현역에서 은퇴,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트루시에는 1999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의 준우승을 이끌며 지금의 월드컵대표팀 밑그림을 그려냈다.
2000년 아시안컵 우승과 이듬해 국제축구연맹(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 등 일본축구를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린 그는 자신감에서는 히딩크보다 앞선다.
트루시에는 월드사커와의 인터뷰에서 한일월드컵 우승후보로 일본을 꼽는 등 당찬 배포를 과시했다. 그 이유로 “세계적 축제인 월드컵에서는 꿈을 키우고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지 꿈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 주최국 스웨덴이 결승까지 진출할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드물었다면서 “1%의 가능성이라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감독의 임무”고 설명했다.
선수들을 다루는 트루시에의 용인술도 히딩크와 흡사하다. 우선 다기능 플레이어를 선호한다.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브라질 귀환선수 산토스 알레산드로와 오노 신지 등은 한결같이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해낸다. 우리 팀의 송종국 김남일과 비슷하다.
또 나카타 히데토시를 다루는 방법은 그의 탁월한 용인술을 잘 말해준다. 그는 일본 최고스타 나카타에게 “독불장군에게 미래는 없다. 이기적인 선수는 결코 월드컵에서 뛸 수 없다”고 말하는 등 팀워크를 강조했다. 히딩크도 튀는 행동을 싫어한다.
그러나 나카타가 자숙하는 제스처를 보인 데 이어 3월 폴란드전에서 선취골을 뽑아내자 “나카타는 5명의 매니저와 2명의 의사와 함께 헬기를 타고 다녔지만 지금은 자전거를 애용한다. 인간적으로 그가 달라진 게 중요하다”며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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