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이발사 박봉구’(고선웅 작, 최우진 연출)가 밀려드는 관객으로 매진 행진을 하고 있다.극장 안은 웃음바다다. 몇 분 간격으로 폭소가 터진다. 그러다 끝에 가서는 숙연해진다.
이발사를 성스러운 천직으로 알고, 이발 가위와 바리깡으로 꼬인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투지에 불타던 박봉구가 현실의 벽에 부닥쳐 처절하게 부서져버리는 결말이 찡하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머리는 잘라도 머리터럭은 손대선 안된다며 데모도 하고 글도 써올렸을 정도로 머리터럭을 소중히 여겼응께 이발을 허는 것은 소중한 일이지요. 이발은 바로 선비정신의 구현이요 하늘이 내려준 귀중한 기술이랑께.”
전라도 사투리로 박봉구가 토하는 열변은 배꼽 잡게 우습고 진지하다. 박봉구 역 정은표(36)의 열연은 모처럼 연극 보는 재미를 돌려준다.
술에 절어서 흐느적대며 헛소리를 늘어놓는 백수 역 오 용(29)의 연기도 어찌나 천연덕스러운지 그가 등장하기만 해도 웃음이 터진다.
박봉구가 깡패들에 맞서 목숨 걸고 지킨 가게는 퇴폐이발소에 밀려 파리만 날린다.
별수 없이 퇴폐영업을 시작한 박봉구는 우연히 재벌 회장의 눈에 띄어 전속 이발사가 될 꿈에 부풀지만,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자 이발사의 등장으로 꿈은 박살나고 만다.
절망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는 세상을 향해 면도칼을 휘두르고 죽음 같은 잠에 빠진다.
이 작품은 연극은 배우의 예술임을 새삼 일깨운다. 아쉬운 점도 있다. 꿈이 깨지자 그 좌절감이 바로 살인으로 이어지는 설정은 급작스럽다.
촌스럽기만 한 박봉구의 대사가 어느 순간 우아하고 상징적인 은유로 바뀌는 것, 이를테면 “나는 우주에서 왔어. 그러니 지구에 적응할 수가 없제” 식의 대사도 어리둥절하다. 6월 2일까지. (02)2271-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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