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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필을 쓰다 / 이주일선생님,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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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필을 쓰다 / 이주일선생님, 힘내세요

입력
2002.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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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 선생님께.선생님을 처음 만난 지 벌써 두 달이 돼 갑니다. 일산 국립암센터 부속병원 538호였지요. 태어나서 처음 가본 암 전문 병원. 아직도 바람이 마냥 매서웠던 3월 초였습니다.

가느다란 산소 호흡기를 코에 꽂은 선생님의 모습은 저를 참담케 했습니다. 중학생 시절 TV를 통해 본 ‘코미디언 이주일’이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

빡빡머리 중학생은 이제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 됐는데, 전국을 누비시던 선생님은 3평 남짓한 병실에 가만히 누워계시더군요.

어렵사리 한국일보 지면에 선생님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하고 돌아오는 길, 저는 더욱 참담했습니다.

“이렇게 아픈 사람에게 무슨 글이야?”라는 선생님의 속마음이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는 스스로를 다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신문에 글을 쓰시다 보면 투병의지가 생기실 거야. 그러면 하나님은 기적을 주실 것이고…”.

일산 병원과 분당 집을 오고 가며 선생님 만나기를 20여 차례. 선생님의 구술을 그대로 적어 ‘나의 이력서’라는 제목의 신문칼럼에 옮기면서 저는 그때 제 위안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이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늘 제게 이런 말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주일인데 내가 이까짓 암 하나 못 이길 것 같아?” 물론 당신 자신에게 하신 말씀인 줄 알지만,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선생님.

기억 나시지요? 한국월드컵대표팀과 중국대표팀의 평가전이 열린 4월27일 저녁때를요.

그 전날 선생님은 “선생님, 저랑 축구나 한번 같이 보시죠”라는 제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셨죠.

평소 축구 보기를 즐기던 저와 축구광으로 알려진 선생님. 우리는 병실 침대에 나란히 앉아 비록 TV를 통해서지만 재미있게 경기를 봤죠. 경기는 선생님이 지적하신대로 졸전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일요일에 근무를 해야 하는 신문기자에게는 그야말로 천금 같은 휴일이지요.

저는 만삭의 아내를 집에 두고 차를 몰아 병실로 향했습니다. 지하매점에서 과일주스를 사서 병실 문을 여는 순간 선생님은 다른 오락 프로그램을 보시더군요.

제가 3분인가 늦었을 겁니다. “선생님, 왜 축구 안 보세요?”라는 말에 선생님은 “김기자 오면 같이 보려고”라고 그러셨죠. 그 순간 어찌나 목이 메이는지….

선생님.

반드시 일어나셔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맑은 마음으로 살아오신 선생님이 여기서 멈추실 수는 없습니다.

마음이 약해 다른 사람에게 이용만 당하신 선생님이 암이란 놈에게 또 이용당할 수는 없습니다.

‘나의 이력서’를 쓰신 다음에는 ‘암 정복기’를 쓰셔야죠. 그리고 이번 월드컵은 TV를 통해 보시지만 2006년 독일월드컵은 현지에서 저와 함께 보셔야 합니다.

진짜 큰 목소리로 어느 팀이든 신나게 응원을 펼칠 수 있을 겁니다. 그때는 결코 늦게 도착하지 않겠습니다.

선생님, 꼭 일어나십시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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