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에 짝짓기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합병 논의의 중심에 선 은행들 간에 신경전이 뜨겁다. 시장 논리상 은행의 자산규모나 영업실적 등에 따라 ‘먹느냐, 먹히느냐’의 입장이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14일 금융계에 따르면 신한ㆍ하나ㆍ한미ㆍ서울ㆍ제일 등 주요 합병추진 은행들의 ‘몸값’올리기 경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올 1ㆍ4분기 실적집계 결과 은행간 명암이 확연히 엇갈리고 있다. 우선 시장으로부터 ‘인수 주체’로 지목되고 있는 신한과 하나의 영업실적개선이 두드러진다.
한미은행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해 1ㆍ4분기에 비해 실질적인 영업성과를 나타내는 충당금적립전 이익이 무려 35.68%나 증가한 3,126억원을 달성, 5개 은행 중에서는 최고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서울과 제일은행에 공식적으로 관심을 표명한 하나은행 역시 충당금 적립전이익이 2,111억원으로 전년 동기(1,784억원)에 비해 18.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두 은행은 부실자산의 비중을 나타내는 고정이하여신 비율도 3월 현재 각각 1.78%(신한), 2.13%(하나)로 우량 수준을 유지했다.
반면 ‘피합병’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영업실적이 저조, 어쩔 수 없이 합병 물살에 휘말릴 공산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한미은행의 경우 충당금적립전 이익이 지난해 1,425억원에서 1,575억원으로 10% 느는데 그쳐 합병 추진 은행 중 가장 낮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한미는 특히 고정이하 여신비율도 2.64%로 5개 은행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자산 건전성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554억원 규모의 하이닉스 전환사채(CB)에 대해서도 대손충당금을 현재 19% 정도만 쌓고 있어 향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편 하나은행은 물론 조흥, 외환은행 등으로부터 집중 ‘구애(求愛)’를 받고 있는 서울은행의 경우 충당금 적립전 이익 20.9% 증가(698억원→844억원), 고정이하 여신비율 2.17% 등으로 피합병 대상 은행 중에는 가장 좋은 성적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당기순이익도 지난해 1ㆍ4분기 300억원에서 올해는 566억원으로 88.7%나 신장한 것으로 나타나, 향후 합병논의에서 유리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의 대형화ㆍ겸업화 추세가 계속되면서 일부 후발은행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며 “자산 규모가 미미하고 영업실적이 저조한 은행일수록 생존 차원에서도 합병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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