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가 13일 역사적인 핵무기 감축에 합의함으로써 양국은 냉전시대의 유산인 핵대결 구도를 넘어서서 21세기의 동반자적 관계를 향한 큰 발을 내딛게 됐다.현재 양국이 보유 중인 핵탄두의 3분의 2를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번 협정은 23일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릴 미러 정상회담에서 공식 서명된다.
특히 이번 합의에 이어 14일부터 아이슬랜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러시아 간의 공동외무장관회담에서 러시아의 나토 참여 문제도 합의될 예정이어서 세계는 바야흐로 새로운 국제 질서 개편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협상타결 내용
양국은 제1차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Ⅰ)에 따라 현재 각각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된 핵탄두 6,000기를 10년 뒤인 2012년까지 1,700~2,200기로 각각 감축키로 했다. 현재 미국은 6,000기, 러시아는 5,500여기의 핵탄두를 보유 중이다.
양국은 또한 논란이 돼 왔던 합의안의 문서화 형태와 감축 탄두 처리 문제는 서로 절반씩 양보하는 형식으로 타결했다. 즉 양국은 합의안 형식을 조약(Treaty)으로 하기로 한 반면 감축 대상 핵탄두 일부를 언제든지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깊이 저장하기로 했다.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국회비준의 어려움을 고려해 조약이 아닌 협정(Agreement)형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러시아는 미국이 일부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고 저장하는 데 반대해 왔다. 그러나 총론에서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감축 핵무기의 처리 문제를 놓고 아직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전해져 추가 협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타결 의미
이번 협상 타결은 세계 최대의 핵강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제2차대전 종전 이후 세계질서를 지배해 왔던 동서냉전의 군사적 대결 구도를 완전히 청산하고 새로운 동반자 관계로 거듭날 수 있는 협력 구도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부시 대통령은 타결 소식을 발표하면서 “타결안 서명을 통해 냉전시대의 유산을 청산하고 미국과 러시아 양국 관계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가겠다”고 강조하고 “이 합의는 세계를 좀더 평화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미러 양국은 이번 합의 이행을 통해 핵무기 보유 및 관리에 따른 비용 부담을 줄여 탈냉전시대에 걸맞은 형태로 국방전략을 개편해 나갈 수 있게 됐다. 부시 대통령은 회심의 선거공약인 미사일방어(MD)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국방예산의 확보가 용이할 전망이며 러시아와도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을 대체할 새로운 협상을 추진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유럽 위주의 정치, 군사적 편향성을 벗어나 중국을 위시한 동아시아와 중동지역 등에 군사력을 전용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 중인 미국으로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반테러 연합전선의 구축에 나설 전망이다.
러시아도 계륵과도 같았던 핵탄두를 관리하는 비용을 전용해 경제개발 등에 주력할 여유를 갖게 됐다.
◆러시아의 NATO 참여
나토와 러시아는 14일부터 이틀간 아이슬란드에서 외무장관회담을 열고 지난해 가을부터 논의된 나토ㆍ러시아위원회(NATO-Russia CouncilㆍNRC) 구성 문제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나토 회원국 19국과 러시아가 참여하는 19+1형태의 NRC의 핵심은 러시아에게 사전협의권을 주는 문제다.
러시아는 이를 통해 나토와 평화유지 임무, 무기통제, 재난구조, 공동미사일 방어망 문제 등을 사전협의할 수 있게 돼 사실상 나토와 공동체제를 운영하는 효과를 얻게됐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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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핵감축 첫 협상
미국과 옛 소련이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협상을 시작한 것은 1982년 6월 제네바 회의였다. 1972년과 79년 두 차례 체결한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이 전략핵무기의 개발을 제한, 양적 동결을 추구한 데 반해 START는 전략 무기의 대폭적인 감축을 목표로 한 적극적인 교섭이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정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미사일(SLBM)의 탄두 수를 각각 5,000기로 제한할 것을 제안했으나 총 무기수의 삭감을 원했던 옛 소련이 반발, 양국은 협상 개시 9년 만인 91년 7월에야 합의에 이르렀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옛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서명한 STARTⅠ은 양국이 보유한 ICBM 등 장거리 핵무기를 향후 7년 동안 각각 30%, 38% 감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체결 한 달 만에 소련 연방의 붕괴로 STARTⅠ의 실효성이 문제되자 부시 대통령은 STARTⅡ의 체결을 추진, 1993년 1월 러시아의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2003년까지 다단투 ICBM을 전면 폐지하고 각각 3,000기와 3,500기씩의 핵무기만을 보유하는 데 합의했다.
2000년 4월 양국은 제네바에서 STARTⅢ를 통해 보유 핵탄두를 2,000기 수준으로 줄이는 방안까지 논의했으나 미국이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을 추진하면서 핵감축 협상은 난항을 거듭해 왔다.
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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