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국이 조기 과열되면서 후보들의 몸 낮추기가 부쩍 눈에 띈다.눈높이만을 국민 수준에 맞추려는 게 아니라, 아예 몸 전체를 유권자의 평균이하로 낮추려는 노력이다.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는 트레이드 마크가 '서민 대통령' 이니까 그렇다손 치더라도,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후보수락 연설에서 큰절을 하고 후보로서의 첫 공식일정을 환경 미화원들과 함께 청소작업을 하는 것으로 잡았다.
■대통령이 되는 것을 대권(大權)을 잡는다고 하고, 국무총리만 지명 받아도 '1인지하 만인지상' 운운하며 호들갑을 떠는 게 우리 관행인데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이 몸을 낮추는 것은 세상이 그만큼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제왕적 대통령'에 신물이 나고 청탁을 가리지 않고 이권개입을 해대는 대통령 아들과 주변 인물들의 '특권의식' 에 넌덜머리가 난 민심을 읽은 결과다.
■노무현 후보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남대문 시장(서울), 자갈치 시장(부산), 동성로(대구), 금남로(광주), 은행동 거리(대전)에서 마주친 시민들과 소주 잔을 기울일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노 후보는 지방방문 때 보도진과 격의 없이 승합차를 함께 타고 설렁탕으로 식사를 한다.
이회창 후보도 이에 뒤 질세라 옥인동 자택을 서둘러 개방, 한인옥 여사가 시장을 봐온 삼겹살과 순대 등으로 손님을 접대 했다.
지방출장 때 호텔보다는 장급 여관에서 묵고, 시장 아주머니의 손을 덥석 잡는가 하면 흙이 묻은 오이를 스스럼 없이 먹는다.
■두 후보 진영은 상대방의 국민 다가서기를 득표용이라고 서로 깎아내린다.
이 후보측은 노 후보의 행태를 포퓰리스트(인기영합주의) 라고 비난하고 , 노 후보측은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고 이 후보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한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기분나쁜 일은 아니다. 모처럼 만에 주인대접을 받아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대접이 언제까지 가느냐이다. 대선(12월 19일)까지 한시적 대접이라면 받지 않느니 만 못하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두고 볼 일이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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