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생로병사를 겪는다. 미국에서는 2000년 176개, 지난해에는 257개가 간판을 내렸다. 올해에는 1분기에만 67개 기업이 파산했다. 이들 기업은 왜 실패한 것일까.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지는 최신호(27일자)에서 미국 기업의 실패 원인 10가지를 분석, 보도했다. 포천지는 기업의 실패는 외부 요인보다는 경영의 잘못 때문이라고 진단했다.▼성공이 눈을 가린다
“시스코의 미래에 대해 이보다 더 낙관적일 수는 없다.” 연간 50% 성장 신화를 이어가던 2000년 12월 인터넷 장비업체인 시스코의 존 챔버스 회장의 자신에 찬 일성이다. 그러나 시스코는 지난해 시가총액이 88%나 폭락하는 쓴맛을 봤다. 잘 나갈 때 경영자들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고 한다. 산악사고는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더 많이 나게 마련이다.
▼변화가 두렵다
1985년 잘 나가던 인텔의 창업자 앤디 글로브 회장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값싼 제품을 앞세워 메모리 시장에 뛰어든 일본 기업들의 거센 도전에 매출이 뚝 떨어지고 있었다. 글로브 회장은 곧바로 메모리 반도체 라인을 뜯어내고 대신 프로세서 라인을 깔았다.
지금 인텔은 세계 최대 프로세서 반도체 메이커가 됐다. 이에 비해 제록스 경영진은 복사기 사업이 채산성이 떨어지는데도 현실을 직시(낡은 사업 모델)하지 못하고 환율불안과 남미시장 문제 등을 내세우며 변화에 주저했다. 제록스는 파산했다.
▼CEO가 무서워
1997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130억 달러의 투자비가 드는 자동차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당시 경영진 대부분이 과잉투자임을 알면서도 침묵한 결과 이 회장은 20억 달러의 개인 돈을 날려야 했다.
심리학자 다니엘 골드만은 “CEO들이 의사결정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직원들이 바른 말 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직원들은 경쟁사보다 반대 의견을 깔아뭉개는 자신의 CEO를 더 무서워한다.
▼무모한 도전
광섬유 네트워크 업체인 글로벌 크로싱의 실패 원인은 두가지 위험을 안고 무리하게 사업을 벌였다는 점이다. 검증이 안 된 광섬유 네트워크 시장을 놓고 이 회사는 지나친 과욕을 부렸다. 그것도 120억 달러의 부채를 안은 유동성 위기를 안고서였다.
▼합병 만능주의
통신업체 월드컴 전 버나드 에버스 회장은 폭식가였다. MCI, MFS, UU넷 등 닥치는대로 기업을 인수했다. 문제는 소화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월드컴은 합병으로 시너지효과를 얻기보다 급조된 합병에 따른 혼란으로 주가가 98%나 폭락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주가에 과민 반응
세계적 통신장비업체인 루슨트의 전 리치 맥긴 회장만큼 월스트리트를 좋아한 CEO도 드물다. 주가를 띄우기 위해 장밋빛 전망을 남발했고 매출 목표를 맞추느라 제품을 헐값에 내다 팔기도 했다. 주가를 위한 주가는 오래가지 못했다. 80% 주가폭락의 책임을 지고 맥긴 회장은 물러났다.
▼흔들리는 회사전략
미국 최대 유통업체였던 K마트는 1980년 이후 경영진이 교체될 때마다 회사 전략을 수정하다 결국 부도를 냈다. K마트는 짐 콜린스가 그의 저서 ‘위대함을 향해’에서 표현한 대로 ‘파멸의 올가미’에 걸려든 것이다.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경영권과 회사 전략의 신속한 안정은 더욱 절실하다.
▼한탕주의 기업문화
부실회계 등으로 불거진 아더 앤더슨, 엔론의 최근 실패는 잘못된 기업문화에서 비롯됐다. 한 기업의 문화 풍토는 모든 직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올바른 일을 결정하도록 해 준다. 썩은 뿌리에서는 썩은 열매가 맺는다.
▼신경제의 덫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월 엔론 관련 의회 증언에서 “기업의 부가가치가 부풀려져 있다면 그 회사의 신뢰와 명성은 하루밤 안에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신경제에 대한 맹신으로 숱한 기업이 죽음의 악순환에 말려들었다는 증언이다.
▼꼭두각시 이사회
이사회는 회사 경영의 독단과 위험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견제장치다.대부분 이사회는 CEO의 꼭두각시다. 엔론 이사회를 조사한 의회 보고서는 “엔론 이사회가 거래의 위험에 대해 주의깊은 관심을 가졌다면 파국은 막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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