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영국의 래드클리프 병원에서 워윅 교수의 왼쪽 손목 안에 사방 3㎜짜리 실리콘칩을 이식, 이 칩에서 나온 전극 100개를 주변 신경과 연결하는 수술이 행해졌다.수술 부위가 아물면 팔뚝에 연결케이블을 설치하여 고통, 분노 등에 의해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대학 컴퓨터에 전송할 계획이라고 한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던 사이보그(인간생체와 기계의 결합체)가 실제로 등장한 셈이다.
인간의 신체에 기계를 결합한 이 충격적인 실험은 인간의 미래에 대한 어떤 불안한 예언이 아닐까?
아직은 손목에 작은 실리콘칩을 이식하는 수준이지만, 인간 복제의 가능성을 호언장담하는 유전공학이나 첨단 전자공학의 발전속도까지 감안하면 결국에는 인간 자신이 호스트 컴퓨터에 정보를 제공하는 단말기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경향은 이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손목에는 실리콘칩이 박혀있고 뇌에는 컴퓨터를 장착한 인간을 상상해 보라.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인간성의 상실을 두려워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지 감정이 없는 한낱 기계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절대화하려는 현대인들의 태도는 묘하게도 140여년전,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했을 당시를 연상시킨다.
‘종의 기원’을 읽은 한 주교의 부인은 이렇게 외쳤다.
“인간이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오, 맙소사. 우리 모두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시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것이 널리 알려지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19세기인들은 인간과 짐승의 경계를 절대화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믿고 싶어했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격렬한 반대는 그러므로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전개한 이론은 사실 매우 간단하다.
하나의 종 안에서 특이한 형질을 가진 변종들이 태어나고 그러한 변종들이 환경에 잘 적응하여 수를 늘려간다면 그들이 결국 새로운 종을 이룬다는 것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은 사실 변종의 기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예컨대 영국의 공업지대에서 살던 회색 나방들은 그 지역의 매연이 심해지면서 검은 색을 띠게 되었다.
검은 색을 띤 나방일수록 천적의 눈을 피하기가 쉬웠기 때문에 그들은 기존의 회색 나방을 누르고 다수 종으로 탄생했다.
1861년에는 조류와 파충류의 중간형태인 시조새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파충류와 시조새 그리고 조류는 따로따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변종들이 독립된 종으로 굳어진 것이었다.
또한 사람의 팔, 고래의 지느러미, 박쥐의 날개 그리고 말의 앞다리를 조사해보니 해부학적으로 동일한 구조가 발견되었다.
사람과 고래, 박쥐, 그리고 말은 모두 동일한 조상으로부터 진화된 후손인 것이다. 그밖에도 진화론을 입증하는 사례들은 당시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오늘날 다윈의 이론은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대인들은 심지어 인간을 진화의 최정점이라 여기며 흐뭇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만일 진화론을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적용시켜보면 어떨까?
수많은 종들이 멸종하고 새로운 종들이 탄생해왔듯이, 인간도 언젠가는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다거나 혹은 아예 멸종할 수도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이보그가 출현하는 시대에 ‘종의 기원’을 다시 읽는 우리의 심정은 여전히 불편하다.
어쩌면 인간은 지금 ‘기계_인간’으로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인간도 기계도 아닌 제3의 종이 탄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누가 알겠는가, 미래의 어느날 기계_인간들이 모여 “인간은 인간이지 기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던 우리의 모습을 웃으며 회고할지.
다윈은 우리에게 말한다. 인간이라는 종은 영원하지 않다고. 열린 마음으로 온갖 새로운 것들의 탄생을 대하라고.
동일한 해부학적 구조를 보여주는 박쥐 날개, 고래 지느러미, 말 앞다리, 돼지 앞다리와 사람의 팔. 한길그린북스 ‘종의 기원’(한길사 발행) 중에서.
박성관/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연구원,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