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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 이후] 한국주례인협회 홍진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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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 이후] 한국주례인협회 홍진구 회장

입력
200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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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 한국주례인협회를 만든 홍진구(68)씨는 결혼식 주례만 2,500건을 넘게섰다.'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젊은 커플에게 덕담을 들려주느 것이 바로 어른의 역할'이라고 여기고 있다.≫산이 좋아 산에 가듯 사람 돕기를 좋아했던 나는 생업으로 식당을 경영하면서도 한평생 지역사회 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새마을지도자, 법무부 갱생보호회 위원, 청소년 선도육성회 위원 등을 거쳐 91~97년 3, 4대 서울시의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노년에 내가 보람으로 삼고 있는 일은 주례이다.

내가 주례를 본격적으로 서기 시작한 것은 2000년 2월부터.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퇴직자들을 만나 ‘한국주례인협회’를 만들게 됐다. 주례는 덕과 인격을 갖추고 젊은 사람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주례인협회 회원을 전직 교육자나 고위공직자, 군장성급 등으로 제한했다.

2001년 8월에는 서울 마장동 뒷골목 허름한 건물에 3평 남짓 비좁은 사무실도 마련하고 ‘한국주례인협회’ 라고 간판을 내걸었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 부부들과 수많은 노인들의 교량역할을 하게 됐다.

정치인과 예비정치인, 행정관료 등은 결혼식의 주례를 맡을 수 없게 되면서 예비 커플들이 예식장에 주례를 의뢰하는 경우가 많은 데 영리만을 목적으로 하는 예식장에서는 학식이나 경륜과는 무관하게 주례를 세우기 일쑤다.

결국 주례사가 형식적이고 천박한 내용이 되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인생의 선배로서 결혼식장에서 삶의 귀감이 될 수 있는 말을 들려주기로 마음먹게 된 것이다. 협회에서는 주례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토론회나 학술 세미나도 틈틈이 열고 있다.

간혹 주례를 서면서 황당한 일을 경험할 때도 있다. 언젠가 주례당일에야 신랑의 아버지는 스님, 신부의 부친은 기독교 장로임을 알게 됐다.

처음 주례를 서는 초보자였다면 얼마나 난감했겠는가. 그러나 나는 주례사에서 “불교는 자비요, 기독교는 사랑이니, 자비와 사랑이 만났으니 이보다 더 찰떡궁합이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적잖이 걱정하던 하객들도 마음이 놓였는지 박장대소했다.

나는 결혼식에서의 주례는 신랑신부에게만 들려줄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화와 고민이 많은 긴 인생을 살아가면서 조금이라도 되새겨 힘이 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내가 결혼식장에서 자주 얘기하는 ‘忍一時憤, 免百日優’(인일시분, 면백일우:한때의 화를 참으면 오랜 근심을 면할 수 있다)는 결혼생활에서의 인내를 얘기하는 것이지만,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정년퇴직자들이 주례를 서는 것은 나이든 사람들의 지혜와 교훈을 젊은 세대에게 전한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이자 딱히 할 일이 없는 노인들에게도 좋은 소일거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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