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중독증'이란 병이 있다. 이 병에 걸리면 판단력이 마비된다. 어느 정도인가? 보통 사람들은 불에 손을 대면 뜨겁다는 걸 안다.그러나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에겐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불에 손을 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불에 손을 대 손에 화상을 입고 나서도 자신에게 운이 없었거나 누구의 음모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사고 체계와 사고 방식은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보통 사람들이 그들을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보통 사람들은 중독되고 싶어도 중독될 만한 권력을 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병의 감염 경로는 어떤가? 자신이 누리는 권력이 작고 약할 땐 주변 사람들의 고언(苦言)을 잘 받아 들인다.
그러나 점점 더 크고 강한 권력을 갖게 될수록 쓴소리 하는 사람을 멀리 하게 된다. 자신의 목표도 이뤘거니와 자신이 누리는 권력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얼마 후엔 그 권력자의 주변엔 충성파만이 진을 치게 되고, 그 권력자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돼 판단력 마비 증상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누구의 이야기인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권력자들에게 다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간 이 병엔 약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 어느 언론학도가 6·13 지방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를 겨냥해 ‘권력중독증 예방 백신’을 개발했다. 그 언론학도는 바로 나다.
행여 비웃지 마시고 내 말씀을 잘 들어보시기 바란다.
대통령에서부터 기초 자치단체장에 이르기까지 후보 시절에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유권자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낼 정도다.
그러나 일단 당선되면 권력중독증에 감염돼 공약(公約)은 곧 공약(空約)으로 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가 개발한 '예방 백신'은 바로 그 후보 시절의 겸손함을 최대한 이용하자는 거다.
가칭 '권력중독증 예방 백신법(法)'을 만드는 것도 좋겠지만, 일단 시민운동단체들 차원에서 효능 시험을 해보자.
나의 '예방 백신'은 모든 선거의 모든 후보에게 다음과 같은 서약서를 받아내는 것이다.
"저는 매월 한번씩 시민운동단체들이 저의 직무 수행 및 사생활과 관련하여 제기해 주시는 모든 질문에 성실한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답을 불성실하다고 판단하시면 만족하실 때까지 계속해서 답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제가 드리는 답은 언론에 그대로 공개되어도 좋습니다. 제가 어느 순간 답을 거부하면 그땐 제가 '권력중독증'에 걸린 게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때부턴 절대 저를 믿지 마시고 저의 퇴진 운동을 공격적으로 전개해 주십시오. 물론 저 자신은 그 병에 걸렸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저항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절대 굴하지 마시고 저를 꼭 내쫓아 주십시오. 권력중독증에 걸린 지도자는 모든 사람에게 큰 불행을 안겨 줄 수 있기 때문에 사사로운 인정에 놀아나서는 절대 아니 될 것입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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