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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衡平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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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衡平社

입력
2002.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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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13일 경남 진주에서 백정 해방운동단체 형평사가 태어났다. 그 발기문의 일부는 이렇다.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애정은 인류의 본령이다.그런 고로 아등(我等)은 계급을 타파하고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을 장려하여 아등도 참다운 인간이 되기를 기하고자 한다. 그것이 본사(本社)의 주지(主旨)이다. 과거를 회상하면 종일토록 통곡하여도 혈루를 금할 수 없다.”

수육(獸肉)ㆍ유기(柳器) 등을 다루는 백정은 조선 왕조 신분 사다리의 맨 아래칸에 끼워져 있었다. 이들은 경제적 능력과는 상관 없이 기와집에 살아서도, 비단옷을 입어서도, 갓을 써서도, 도포를 입어도 안 되었다.

그들은 댓개비로 만든 패랭이를 써야 했고, 초가에서 무명옷을 입고 짚신을 신어야 했다. 그들은 말을 탈 수도 없었고 양인과 함께 먹고 마실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는 ‘청백한 사람’을 뜻하는 ‘백정(白丁)’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이 붙여졌다.

1894년의 갑오개혁은 동학 농민군의 요구를 수렴해 백정의 신분적 제약을 없앴지만, 법률적 해방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완강히 남아 있었다. 백정 가족들은 교육과 직업선택을 비롯해 사회 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갖가지 불이익을 받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백정을 실질적으로 해방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가 형평사다. 형평사가 창설되기 한 해 전인 1922년에는 일본에서도 백정 계급에 해당하는 에다족의 해방을 위해 수평사(水平社)가 결성된 바 있다.

의령 출신의 장지필과 진양 출신의 강상호가 각각 강온(强穩) 노선을 이끈 형평 운동은 형평사원들에 대한 테러나 우육 불매 운동 같은 완고파의 반(反)형평운동에 맞서며 최후의 신분 해방 운동에 매진했다. 형평사는 1935년까지 존재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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