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양(瀋陽) 미국 총영사관에 들어간 탈북자들이 한국이 아닌 미국행을 요구함에 따라 그간 탈북자 문제에 있어 제3자적 입장을 취해왔던 미국이 당사자로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미국은 지금까지 탈북자 문제에 대해 “탈북자들이 송환될 경우 처형당하기 때문에 인도적 차원에서 송환에 반대한다”는 입장만을 피력해 왔을 뿐 직접 개입을 자제해 왔다.
미국은 그러나 탈북자에 대한 ‘정치적 난민 지위 부여’ 문제에 대해서는 난민 지위 부여에 반대하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명확한 견해 표명을 꺼려하는 등 소극적 자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이번 선양 총영사관 사건은 미국에게 새로운 선택을 강요하는 국면을 조성해가고 있어 미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1일 “선양 총영사관에 진입한 3명과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했다 중국 공안원들에 의해 끌려 나온 5명의 탈북자 모두가 미국행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하고 “이에 따라 북한 정권을 ‘악의 축’으로 비난하면서도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갖고 있다는 입장을 취해 온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하나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 총영사관에 진입한 탈북자 3명이 나흘이 지나도록 총영사관에 남아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지적하고 “지난달 베이징 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이 하루 만에 중국을 떠나도록 조치된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덧붙였다.
뉴욕 타임스는 “일본 총영사관에서 끌려나온 탈북 가족은 미국 망명을 신청하는 것이 탈북자에 대한 외부의 관심을 더 끌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미국행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하고 “미국이 만약 이들 탈북자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할 경우 이미 미묘해진 중국과의 관계가 더 복잡해지는 것은 물론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는 데도 변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이번에 탈북자들이 미국행을 원함에 따라 중국 내 탈북자들이 유엔 협정에 따른 정치적 난민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느냐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것이 실현될 경우 탈북자 강제 송환이 국제법적으로 불법이라는 근거가 성립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의 지적대로 미국이 처한 난처한 입장은 국무부의 발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사건 이후 ‘송환 반대’와 ‘중국과 협의 중’이라는 입장을 줄곧 밝혀 온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10일 탈북자들의 미국 망명 요청에 대한 확인 질의에는 “확인중”이라며 즉답을 회피했다.
이에 대해 외교소식통은 “미국은 이번 탈북자들의 미국 망명을 받아 줄 경우 초래될 정치적 파장을 다양하게 검토 중”이라고 전하고 “때문에 탈북자들에게 한국행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미국은 국내법상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소신 등에 따라 송환될 경우 처벌받는다는 명백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만 망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이번 사건이 선례가 될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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