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영재교육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부산과학고가 내년부터 과학영재학교로 전환된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우려가 크다. 과학영재학교가 결국 ‘제2의 과학고’가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이다.
과학고가 처음 생겼을 때를 생각해 보자. 과학고 설립 당시에는 취지가 괜찮았다.
입시에 제한받지 않으면서 창의력을 계발 증진시키고, 과학적인 사고와 실험을 통해 진정한 과학자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과학고가 서울대에 입학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새롭게 시작하는 과학 영재 교육은 어떤 방식이 되어야 할까?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한 가지 재미있는 사례를 들어보겠다. 우리가 잘 아는 아인슈타인에 관한 내용이다.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것은 1905년이었다. 당시 그가 발표한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뒤엎는 그의 이론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실험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내용 탓이었을까.
그의 뛰어난 업적은 노벨상이라는 ‘하나의 형식’으로 인정 받지는 못했다.
나중에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는 했지만, 그의 놀라운 연구 성과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액체나 공기가 미세한 입자운동을 한다는 브라운 운동 이론, 시간과 공간을 중력과 연결시킨 일반 상대성 이론, 1917년 우주방정식에 도입한 우주상수 등 그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여지는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천재 중의 천재’인 아인슈타인은 영재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만약 지금과 같은 과학고 신입생 선발 방식이었다면 아인슈타인은 그 축에 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시험 성적도 좋지 않았고, 공부 의욕도 없었으며, 강의실에서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한 아인슈타인을 어떻게 영재로 선발할 수 있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과학영재학교의 신입생 선발과 운영에 필요한 조건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영재학교의 신입생을 선발할 때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과학 영재와 학업 모범생은 다른 말이다.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객관적 자료를 필요로 한다고 해서 시험 성적을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는 추천서, 자기 소개서 등의 서류전형으로 1차 합격자를 선발한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국의 대학에서는 신입생 선발이나 교수를 뽑을 때면 추천서를 가장 중요시 한다. 아무리 성적이 나빠도 추천서의 내용에 따라 당락이 갈리는 것이다.
영재교육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추천서를 믿는 사회 풍토가 형성돼야 한다. 솔직하고 정직한 추천서를 쓰고, 또 그런 추천서의 내용을 믿는 사회가 되어야 영재교육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진짜 그 학생이 창의력이 있는지, 꾸준히 연구를 할만한 집중력과 지구력은 있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길은 추천서에 있다. 용기와 사회의 믿음이 함께 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다음으로 학부모들도 영재교육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부모들의 과잉 관심, 교육열은 분명 영재학교의 취지를 훼손할 게 뻔하다.
부모들의 허영을 채우고, 체면을 세우기 위해 아이들을 영재학교에 진학시키는 것은 죄악이다. 그들의 인생을 망치는 길이다. 과학영재학교를 과학고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저 아이는 영재학교에 가는데 너는 뭐냐.” 이런 말처럼 나쁜 것은 없다. 영재학교는 그렇게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내가 교수로 근무했던 존스 홉킨스대는 미국 내에서도 영재교육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기로 유명하다. 심리학자인 줄리안 스탠리 교수는 1972년부터 미국 내의 영재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고, 매년 여름이면 전국의 영재를 모아 여름 캠프를 열곤 했다.
처음에는 12세가 되기 전에 미국 SAT에서 수학과 어학부문 총 1,600점 중 1,200점 이상을 받는 학생들을 모아 영재교육을 시켰다.
1979년에 정식으로 영재연구소를 설립하여 영재의 발굴과 동시에 체계적인 교육은 물론 수준에 맞는 연구하도록 하였다.
2000년도에는 9만 명의 영재가 발굴되었고 그 중 9,000명이 전국에 있는 여름학교를 다녔으며 2,500명은 통신과정을 선택했다.
지금까지 이 연구소가 발굴한 영재는 거의 50만 명에 육박하며, 10만 명이 연구소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그러나 존스 홉킨스대의 영재 연구소에서 발굴한 영재들을 봐도 ‘그들이 박사학위를 빨리 취득한다’ 등의 통계는 있어도 ‘일반 학생 출신보다 더 많은 비율로 노벨상 수상자나, 유명한 과학자가 됐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인간으로서의 균형감각 문제이다.
어린 영재들이 지적인 능력은 물론 예ㆍ체능적인 능력도 균형있게 갖추도록 도와줘야 한다.
실험실에서만 사는 불행한 천재 과학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많다. 내가 아는 미국 아이비리그 모 대학의 교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박사 학위를 22세에 받고, 25세에 종신교수가 된 그는 모두가 탄복한 천재였다. 내가 반입자 대칭 붕괴에 관한 계산을 6개월에 걸쳐 풀고, 결과를 쓴 논문을 보냈더니 그는 단 며칠 만에 다시 풀면서 내가 틀린 부분을 지적했다.
당시 나는 30세의 연구원이었고, 그는 10대 후반의 학생이었다. 그 교수가 어렸을 적부터 아인슈타인에 필적할만한 굉장한 천재였다는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는 기대했던 것만큼 뛰어난 연구업적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나는 영재교육은 앞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밀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적의 조건을 갖춘 상태에서 강요 없이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탠리 교수의 영재교육관 역시 비슷하다. 그는 이런 사고 방식으로 미국의 영재교육을 이끌었다.
우리가 지금 시작하는 새로운 과학영재교육도 이 말을 명심했으면 한다.
영재교육은 영재이기 때문에 실패하고 불행해질 수 있는 수많은 학생들을 구제하는 것 만으로도 존재가치가 있다.
그러나 새롭게 시작되는 한국의 과학영재 교육은 또 다른 목표도 있다. 어려서부터 갖고 있는 뛰어난 능력이 사장되지 않도록 사회가 도와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체계적이면서 균형감 있는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과학영재교육은 단순히 생각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고등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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