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세기 말까지도 국제상황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임금님들로 인하여 쇄국정책으로 일관하였다.그러다가 급기야는 우리보다 먼저 변화를 수용하여 국가를 근대화한 일본에게 20세기 초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세계의 변화를 뒤늦게 깨달은 우리는 그 후 36년간 일본의 식민 통치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20세기 말 한국 경제는 과거 개발 연대의 관행에 사로잡혀 국제금융시장의 급격한 변화, WTO체제의 등장 등 국제경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IMF사태를 맞게 되었다.
이 또한 국제환경 변화와 자체 경제능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지도자의 국가경영 능력 부족에 연유한 것이었다.
비록 IMF사태는 미국과 국제통화기금의 지원,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으로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지만 우리 경제가 치른 대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떠한가. 최근 일본 사람들은 1991년부터 현재까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일본 정부는 1991년부터 현재까지 11번의 경기부양책을 실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당면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데 아직도 5년에서 10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은 오늘날 선진국 중 가장 어려운 경제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면 1980년대 말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살아 남으려면 배우지 않을 수 없다던 일본경제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원인은 일본의 지도자들이 그간의 성공에 도취되어 세계경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 경제와 일본 경제를 비교하면서 한국은 구조개혁에 성공하여 경제를 정상화한 반면 일본은 이를 적기에 단행하지 못하여 현재의 경제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의 구조개혁과 관련하여 한국 경제와 일본 경제의 근본적인 차이는 오히려 역설에 가깝다.
한국은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어 외부의 강요에 의하여 외형적이라도 구조개혁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일본은 아직도 외환보유고 1위국이고 국제수지가 계속 흑자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구조개혁에 절박감을 느끼지 않았을 뿐이다.
그 동안 한국은 일본의 산업화 과정과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IMF사태를 초래했던 원인인 기업의 과잉 부채와 과잉 시설, 이로 인한 금융권의 부실 등은 오늘날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인들과 동일하다.
변화에 적응하는데 장애가 되는 요인은 또 있다. 일본 정부가 구조개혁을 단행하지 못하는 요인은 일본 특유의 정치·관료·재계에 의한 국가경영의 '3각 체제' 때문이다.
정치는 관료보다 우위에 있고 관료는 재계를 압도하나 정치는 재계의 정치자금에 굴종한다.
이러한 권력의 상호 역학관계가 유지되는 한 일본이 가까운 장래에 경제구조 개혁을 이룩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한국에도 일본과 유사한 관계가 정립되어 있다. 특히 재계의 목소리가 정치와 관료의 영역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1997년 IMF사태 이후 한국이 외형적으로는 구조개혁을 단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구조개혁이 지연되고 있는 요인이다.
현재 한국은 외환보유고가 1,000억 달러를 상회하고, 국제수지가 흑자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1997년과 같은 외환의 유동성 위기를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안도감이 아직도 미완인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을 현 상태에서 지연시킬 우려가 있다.
이 경우 한국 경제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일본경제의 실패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한국은 국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이 일본과는 다르다.
일본의 총리는 국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당내 파벌들의 협의로 결정되지만, 한국의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투표에 의하여 선출된다.
따라서 국민이 변화를 수용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정직한 대통령을 선출할 수만 있다면 21세기 한국 경제의 발전을 위한 장애요인들이 해소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통령을 2003년에는 기대해 보자.
前 청와대 경제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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