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금융감독당국의 행정지도가 오히려 금융권의 가격 카르텔을 조장하고 있다고 판단, 이를 시정하기 위한 조사에 나서 부처간 논란이 일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금융기관이 조사를 받지만 내용적으로는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정부당국이 조사대상이 되기 때문이다.공정위는 최근 법이나 규정에 근거하지 않은 금감위ㆍ금감원의 행정지도로 금융기관들이 사실상 가격담합을 하고 있다고 판단, 고강도 조사에 착수했다. 금융 소비자에게 직접적 영향을 주는 손해보험사의 자동차보험료나 은행 수수료 등이 집중 조사 항목이다.
보험료나 수수료는 금융기관 자율로 결정하도록 돼 있지만, 요금체계 변경이나 사회적 파장이 있는 요금 결정의 경우 금감원과 사전 조율을 거치는 게 관행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금감원의 간섭이 가장 많은 항목을 선정, 조만간 현장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며 “특히 자율화가 됐음에도 불구, 여전히 행정지도가 많은 자동차보험료와 금융권의 각종 수수료 결정 과정 등에 대해 면밀히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금융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정지도가 적발될 경우 해당 금융기관에 대해 제재를 내리는 한편, 금감위ㆍ금감원에도 자제를 요청할 계획”이라며 “부처간 협의를 통해 해결이 안되면 국무회의나 경제장관간담회에 상정, 해결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이남기(李南基) 공정위원장은 최근 강연회에서 “시장실패가 곧 정부개입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닌 만큼 정부가 금융기관 경영에 간섭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며 “행정지도로 인한 카르텔 조장을 억제하기 위한 시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대해 금융감독당국은 “각종 규제를 완화한 결과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정지도는 거의 사라졌는데도 공정위가 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월권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행정지도는 업계에만 내버려뒀을 경우 경쟁관계 때문에 해결이 안되거나 과당경쟁을 유발,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질 수 있는 등 극히 불가피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오히려 금융소비자의 편익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위 관계자도 “구조조정이 마무리돼 공정위의 핵심업무가 독점정책에서 경쟁정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금융권에까지 개입하려는 시도”라며 “전문영역이 아닌 금융권에 대해서도 뭔가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금융 콤플렉스’의 발현”이라고 꼬집었다.
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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