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회사원 이수연(32)씨는 아홉살과 네살된 두 아들이 한꺼번에 뇌수막염에 걸려 고역을 치렀다.열나고 토하면서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해 그저 감기려니 생각했는데, 난데 없이 전염병 진단을 받아 회사에 결근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더위가 일찍 시작되면서 바이러스성 뇌수막염과 일본 뇌염 등 각종 전염병이 때 이르게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립보건원이 최근 전국에 일본 뇌염 주의보를 발령했고,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전국 주요 병원에는 뇌수막염, 수족구(手足口)병, 세균성 이질에 걸린 어린이 환자가 하루 10명 넘게 몰리고 있다.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광주, 경기 지역에서도 뇌수막염 환자가 늘고 있어 국립보건원에는 각 지역 보건당국으로부터 바이러스성 뇌수막염 의심 환자의 가검물을 분석해 달라는 의뢰가 쇄도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소아과 김동수 교수는 “기온이 예년보다 빨리 높아지면서 초여름이 되어서야 발병하는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이 지난해 보다 한달 가량 앞선 지난달 15일 처음 발생했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
뇌수막염은 뇌와 척수를 둘러싸고 있는 뇌수막에 염증이 생긴 것으로 크게 세균성ㆍ바이러스성ㆍ결핵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요즘 유행하는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은 전체 뇌수막염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은 처음에는 감기처럼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픈 증상으로 시작해 심할 땐 토하거나 목이 뻣뻣해진다.
주로 1~9세 유ㆍ소아에게서 많이 발생하지만, 요즘처럼 유행할 경우에는 생후 3개월 이하의 아기는 물론 10세 이상의 어린이들도 걸릴 수 있다. 또 여자 아이보다는 활동성이 많은 남자 아이의 발병률이 2배 이상 높다.
심한 두통을 호소하고 전신에 발진과 고열을 동반하기도 한다. 심하면 헛소리를 하는 등 의식이 혼미해지고 경련을 일으키기도 한다.
문제는 1세 미만의 어린 아기들이다.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기보다 행동이 느려지거나 열이 나면서 심하게 보채고 토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므로 뇌수막염이 유행할 때에는 아기들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김동수 교수는 “뇌수막염이 의심되면 일단 소아과나 병원 응급실을 찾아 원인 병원체부터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의 치료는 해열제 처방과 영양 주사 보충 등의 대증적 치료로 일주일 내에 80~90%가 치유된다.
다른 전염병들과 달리 예방 백신이 없어 예방법은 따로 없다. 따라서 뇌수막염을 예방하려면 개인 위생과 주위 환경에 신경을 쓰는 수 밖에 없다.
가급적 나들이를 삼가고 외출 후에는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도록 한다. 양치를 할 줄 알면 소금물 양치를 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본 뇌염
일본 뇌염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돼 신경을 침범하는 급성 전염병이다. 일본 뇌염 모기가 산란기에 감염된 돼지를 흡혈한 뒤 사람을 무는 과정에서 전염된다.
15세 이하의 어린이에게 주로 발생하지만 유행할 때는 모든 연령층의 노약자가 대상이 될 수 있다.
잠복기는 4~14일이며, 초기에는 두통, 발열, 구토, 설사 등 소화기 이상 증상이 나타나다가 병이 좀더 진행되면 의식장애, 고열, 혼수, 마비가 일어나고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치사율은 4~10% 정도다.
일본 뇌염의 유행 시기는 보통 6월 말부터 10월 초순인데 올해는 벌써 일본 뇌염 모기가 나타났다.
다만 다른 전염병과 달리 사람들끼리 전염될 염려가 때문에 예방 주사를 맞고 모기를 없애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장경희 교수는 “3~15세 어린이는 반드시 예방접종을 해야 하며 3세에 2회, 4세에 1회 기초 접종을 하고, 그 뒤 15세가 될 때까지 2년 간격으로 추가 접종하면 된다”고 말했다.
접종은 가급적 환자가 발생하기 1개월 전에 하는 것이 좋으며, 예방 접종을 했다고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으므로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수족구병
콕삭키 바이러스가 발병 원인이다. 손발과 입 주위에 물집이 생기고 보통 1주일 정도가 지나면 상태가 호전된다.
고열로 열성 경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합병증은 거의 없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입안이 아파서 잘 먹지 못하면 찬물을 먹이거나, 큰 아이인 경우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이도록 한다.
이 병은 아이들이 접촉하면서 공기를 통해 전염되므로 아무리 주의를 해도 쉽게 걸린다.
하정훈소아과 하정훈 원장은 “수족구병은 열 감기와 비슷하지만, 입안이 헐어서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 좀 다를 뿐”이라며 “아이가 수족구병에 걸리면 집에서 쉬게 하고 잘 먹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만약 아이가 거의 먹지 못하면서, 8시간 이상 소변을 보지 못할 때는 곧바로 소아과 의사를 찾는 게 좋다”고 말했다.
◆세균성 이질
시겔라균이라는 박테리아가 대장에 전염돼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며 심한 경우에는 고열과 두통, 구토 등의 증상이 동반되고 피고름이 섞인 설사를 하기도 한다.
어린이의 경우 전신 경련을 일으킬 수도 있다. 서울아산병원 소아과 고태성 교수는 “세균성 이질 환자는 전염성이 강해 설사가 멈출 때까지 반드시 격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병을 예방하려면 가급적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곳은 피하고, 음식을 먹기 전과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고 난 뒤에는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이밖에 로타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가성 콜레라와 아데노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 식중독 등도 조심해야 한다.
가성 콜레라는 보통 48시간 이하의 잠복기를 거쳐 발열과 구토로 시작해 5~7일간 설사가 지속된다. 아데노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은 치사율이 10%에 이르며, 기관지 확장증, 모세기관지폐색증 등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
전염병은 대개 위생상태가 나쁠 때 많이 발생하므로 여름철에는 특히 주위 환경을 깨끗이 유지하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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