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정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이것은 평생의 믿음이다. 30여간 공직에 있으면서 가장 애썼던 대목은 성폭력과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과 같이 가족공동체를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가정을 지켜내는 문제였다.
또 어떻게 하면 인신매매와 미성년자 매춘, 노예윤락과 같은 인권유린 행위를 근절할 수 있을까 고민해 왔다.
2000년 서울 종암경찰서장 시절 대표적 윤락가인 '미아리 텍사스'를 상대로 한 노예매매춘과의 전쟁이나 지난해 경찰청 방범과장으로 일할 때 벌였던 미성년자 매매춘 근절운동도 그 일환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경찰청 여성청소년 과장으로 상대적 약자인 여성과 청소년의 권리 회복과 '가정 살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얼마 전 가족과 함께 고향에 내려갔다. 친정 집에 가서 성묘를 한 뒤 오후에 어머니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영화 '집으로'를 관람했다.
도시에서 삭막하게 자란 7살의 말썽꾸러기 손자가 두메산골 할머니 집에 내려와 같이 지내면서 할머니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우쳐 가는 내용이다.
영화 속 손자와 할머니의 모습에서 어릴 적 나와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고, 이제는 할머니가 된 어머니와 두 딸의 손을 꼭 잡고 미소와 눈물을 번갈아 흘렸다.
내가 고1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세가 기울었고 설상가상으로 우리와 함께 했던 외숙의 사업도 실패했다. 가재도구를 꺼내 팔아 생계를 이어가야 할 형편이었다.
어느날 나는 예전처럼 굴비를 구워달라고 어머니에게 졸랐던 기억이 있다.
아무 말없이 밖으로 나갔던 어머니는 당신의 검정 치마폭에 큼지막한 굴비 한 마리와 흰 쌀을 담아 오셨고, 굴비를 노릇노릇하게 구워 가시를 발라낸 뒤 흰 밥 위에 얹어주셨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먹는 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게눈 감추듯 밥과 굴비를 먹어 치운 뒤에야 나는 어머니가 식사를 거르셨다는 것을 알았다.
며칠 후에는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때 먹은 굴비와 쌀밥을 위해 어머니는 단 한 벌 밖에 없었던 당신의 외출복을 꺼내준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이불이 다 젖도록 펑펑 울었다. 그 기억은 지금까지 가슴 깊숙이 각인돼 어려운 일에 부딪히거나 좌절을 느낄 때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사랑의 힘이 되고 있다.
오늘날 주부 10명 중 3명이 가출을 생각하거나 시도한다고 한다. 현실을 도피하려는 나약한 주부들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가정을 지키려는 마음과 가족사랑이 부족한 남편들도 큰 문제다.
건강한 사회가 건강한 가정에서 출발하듯 건강한 가정은 바로 가족에 대한 소속감과 사랑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어느 일방의 희생을 강요하는 비뚤어진 가족문화는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우리 사회에도 엄청난 해악을 끼칠 수 있다.
30만~40만원을 갈취하기 위해 7명을 죽인 3인조 강도살해 사건, 유흥비로 탕진한 카드 빚을 갚기 위해 6명의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2인조 강도살해 사건, 30대 남자와 여고생 두 명의 동반 자살 사건 등이 불과 1~2개월 사이에 잇따라 일어났다.
그 가족들 조차 이들의 살인 행각이나 자살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다.
별다른 죄의식 없이 타인의 생명을 앗아간 사람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나 모두 따뜻한 사랑에 굶주려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사랑 받고 싶어하는 본능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바람이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아낌없이 주는 가족의 큰 사랑 속에서 우리는 좀 더 건강한 다음 세대를 약속할 수 있다.
희망의 5월, 청소년과 가정의 달을 맞아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소중한 내일을 위해 오늘 우리 모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김강자 경찰청 여성청소년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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