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대학병원의 외래환자 진료실은 속도전을 치르는 전장 같다. 의사가 각 환자를 만나는 시간은 불과 몇 분, 진단하고 처방하기만도 벅차다.
환자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그의 고통에 마음으로부터 연민을 느낄 새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의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로 보일 수도 있다.
병든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 없이는 어떤 진단이나 원인 규명, 치료도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1994년 초간)는 의학과 의사의 나아갈 바, 의료 윤리에 대한 고민과 반성을 담고 있다.
저자인 미국인 의사 에릭 J. 카셀(코넬대 의대 공중보건학 임상교수 겸 뉴욕병원 내과의)은 과학과 기술에 치우친 현대의학의 한계를 비판한다.
병을 앓는 것은 사람인데, 의사들이 질병 상태와 신체 기능에만 관심을 가짐으로써 점차 환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게 되고 심지어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통을 덜어주는 게 의사의 본분임에 비춰볼 때 의학은 질병 중심에서 병을 앓는 인간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의료 현장의 많은 사례와 일화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고통의 본질과 의학의 목적을 되묻는다.
고통이 그저 몸의 어디가 아픈 게 전부가 아님을, 질병의 상태는 환자 자신의 느낌이나 견해, 신념 등 주관적 요소와 사회적 환경 등 삶의 총체적 맥락과 맞물려 있음을 상기시킨다.
환자의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의료의 출발임을 거듭 일깨운다. 극히 당연하되 쉽지 않은 일인 줄 잘 알지만, 의사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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