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이 책이 처음 출판된 것이 언제였던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70년대 후반쯤이었을텐데, 내가 서점에 놓여있던 이 책을 발견하고 관심을 가졌던 것은 우선은 그 책의 저자가 내가 몇번 만나뵌 적 있는 분이었기 때문이고, 그 다음으로는 당시로서는 가장 긴, 파격적인 제목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책의 큰 제목 밑에 부기되어있던 ‘딸에게 주는 편지’라는 작은 제목 때문이었다.
백기완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명동에 있던 그 분의 연구소에서이다.
그 연구소 이름은 ‘백범사상연구소’였는데 같은 방에 심우성 선생님이 운영하는 ‘한국민속극연구소’ 사무실이 함께 들어있었다.
내가 그 방을 찾아갔던 것은 당시 탈춤이나 판소리같은 우리 민속을 공부하고자 심우성 선생을 뵈러 갔던 것이나, 그 옆에 호랑이같은 인상의 또다른 어른이 앉아 나같은 젊은이만 만나면 우리 민속의 정수를 전달하고픈 욕구에 새삼 포효를 하시곤 하였다.
나는 처음에는 민속에 대한 그 분의 이해가 다소 과장된 것이라고 느꼈으나 얼마 안 돼 그러한 나의 생각이야말로 연약한 ‘학삐리’의 한계였음을 알게 되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는 딸에게 주는 편지 형식으로 쓰인 글이다. 딸에게 쓴 편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예로는 인도의 네루가 있지만, 백선생님이 딸에게 준 편지글에는 네루를 능가하는 박진감과 비장미가 전편에 깔려있다.
백선생님이 품고 있는 대륙적 기질과 범민족적 자부는 범생이(모범생) 출신의 우리들로서는 충격적으로 맞는 새로운 미학이었다.
이 책의 ‘딸에게 주는 편지’ 내용 안에 바로 그 유명한 장산곶매 이야기가 들어있다. 장산곶매 이야기가 우리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70년대 중반 작가 황석영이 한국일보에 대하장편소설 ‘장길산’을 연재하면서이다.
소설 장길산의 첫머리에 장산곶매 이야기가 프롤로그로 깔려 있는데, 그 장엄한 설화의 실제 전승자가 백기완 선생이었음을 우리는 이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젊은 시절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이 책을 생각하며 80년대 초반 ‘공동체문화’라는 무크지를 내면서 백선생님의 큰딸 원담이가 ‘아빠에게 드리는 편지’를 쓰도록 기획하여 싣기도 했다.
임진택 ㆍ연출가 판소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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