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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마테오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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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마테오 리치

입력
2002.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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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년 5월11일 중국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58세로 작고했다. 마테오 리치의 한자 이름은 이마두(利瑪竇)다. 19세때인 1571년에 예수회에 가입해 해외 선교의 뜻을 세웠고, 10여년 뒤 마카오를 거쳐 중국에 들어가 전교(傳敎)를 시작했다.제수이트 교단이라고도 불리는 예수회는 1540년 스페인의 수도사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와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등이 파리에서 창설한 남자 수도회다.

독일 바깥으로 파급하기 시작한 종교개혁에 맞서 반동 종교개혁을 주도한 이 수도회는 세계 각처에 사도들을 파견해 가톨릭을 전파했다. 한국의 서강대학교와 광주가톨릭대학교를 설립한 것도 예수회다.

리치는 유럽의 저명한 지식인 가운데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던 첫번째 사람일 것이다. 그는 중국에서 전교하기 위해서는 유자(儒者)들의 신임을 얻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유럽의 학술 서적을 한문으로 번역했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것이 유클리드의 ‘스토이케이아’를 번역한 ‘기하학 원본’과, 세계 지도 위에 천문학ㆍ지리학 설명을 덧붙인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다. 리치가 소개한 유럽 학문은 중국 지식 계급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서광계(徐光啓)ㆍ이지조(李之藻) 같은 힘있는 관료들도 개종해 그의 선교 사업을 도왔다.

리치의 저술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천주실의(天主實義)’(1603)다. 리치는 가톨릭을 선양하기 위한 이 책을 가톨릭의 언어인 라틴어가 아니라 한문으로 썼고, 유교의 개념들을 대폭 수용했다.

가톨릭 신앙과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서사(西士)와 유학ㆍ불교ㆍ도교 사상을 배경으로 한 중사(中士)가 토론하는 형식 안에 가톨릭 교리를 담아낸 이 책은 동아시아 세 나라의 천주교 수용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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