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시간은 벌써 30분이 지났다.여의도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아직 강변북로다. ‘정신건강의 날’행사에 두 번 사회를 부탁한 적이 있다. 상대가 늦을 때 어떤 반응을 할까? 예측은 ‘최소한 기분 나쁜 표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유니세프 민간대사, 한국여성기금 홍보대사, 녹색연대 홍보대사 그 밖에도 많다. 주변의 청을 거절 못한다. 하지만 면담이 끝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결정한다. 끌려 다니지도 않는다.
연예인이 되기 전 경리사원 모집에 900명 모여 두 명에 뽑혔다. 한 명은 미인이었다. 못생겨서 남자와 만나 도망갈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사장이 뽑았다고 껄껄 웃는다.
전형적인 김미화식 개그다. 실제로는 붙임성과 재치 그리고 차원 높은 순발력과 같은 정서적 성숙도를 세상 풍파에 능한 사장이 알아보았음에 틀림없다.
코미디언들은 보통 때 둘 중 하나의 행동을 한다. 위엄을 보이고 더 경직된 태도를 보이는 경우. 우습게 보이지 싶지 않아서이다.
반대로 화면같이 자연스러운 경우. 김미화는 후자에 해당한다. 평상시와 비슷할수록 정서적으로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
개그도 두 갈래가 있다. 타인을 공격하고 그 대상이 허둥대는 것을 보는 공격성 개그와 자신의 약점까지 소재로 인간 삶을 통쾌하게 풍자하는 경우다.
물론 또 후자다. 분노에는 관심 없다. 사랑과 인생이 목적이다. 그리고 자연스럽다.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김미화식 개그의 첫 번째 특징이다.
개그맨과 정신과 의사의 첫 번째 공통점.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웃음의 유도는 상대의 마음을 읽어야 가능하다.
그 능력은 생활 속에서 그대로 배어 나온다. 개그맨들이 이혼이 적은 이유이다. 남편은 고마운 사람이다. 아내를 무조건 위한다. 힘들어하면 팬티 입은 채로 박수치고, 늦은 귀가에도 싫은 소리 한 번 한 적 없다.
서울대 출신이면서 자신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아내에게만 서재를 마련해 주는 남자. 그 남편을 위해 자신도 노력하고 배려한다. 시댁을 우선하고 남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다.
가끔 여우처럼 바가지를 긁는다. 6개월에 한번 정도. 악성이 아니고 밑에 화가 깔려 있다. 그래서 싸워도 다음 날 그대로 풀어진다.
마주 보면 웃게 된다. 미움이 축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혼 초에는 많이 싸웠다. 친정에 대해 섭섭하게 하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남편 요인일 가능성은 없다. 친정어머니에 대한 무거운 마음과 죄책감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와의 두 번째 공통점은 무의식을 다룬다는 점. 웃음은 그 내용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어야만 유도될 수 있다.
동시에 소재로 사용된 적이 없어야 한다. 과거 속에 존재하고 있지만 언어화는 안된 새로운 것이라야 한다. 무의식에서 소재를 찾는 것은 피를 말리는 창조 작업이다.
소재는 직접 발굴한다. 책, 영화, 연극을 많이 본다. 사람들을 많이 관찰한다. 그래서 새벽시장과 포장마차도 자주 들른다.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 KBS ‘코미디 세상만사’의 ‘삼순이 부르스’코너이다. 방송사 화장실에 근무하는 청소 아주머니들의 애환이 소재였다. 제2의 전성기다. 소재도 신선했고 이전과는 다른 시간대에 한 것도 성공요인이었다.
틀에 박힌 것은 싫다. 욕심이 많아 아이디어 싸움에서 지지 않는다. 쓰리랑 부부의 ‘눈이 튀어나오는 소품’등은 직접 청계천상가를 뒤져 만들었다.
일자 눈썹을 사용하기 위해 ‘순악질 여사’의 만화가 길창덕씨를 만나 사용을 허락 받았다.
침체되어 있던 개그계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개그콘서트’를 기획한다. 세트와 조명을 없앴다. 신인들로 진용을 짜고 연극처럼 꾸미고 NG가 나도 그대로 진행한다.
전에 없는 새로운 형식이다. 새것은 위험하지만 성공하려면 새로워야만 한다. 요즘은 인기가 높아 형식이 고정화하는 것이 안타깝다. 안주하는 삶은 흥미를 가질 이유가 없다.
어릴 적부터 개그맨이 소원이었다. 어머니는 일을 나가고 병환으로 누워 계신 아버지. 어린 딸은 병 수발은 뒷전이고 동네 사람들 앞에서 ‘콘서트’를 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4학년 때 ‘아버지 없는 아이’라고 놀리는 친구의 빰을 때렸다가 크게 혼이 난다.
친구들 앞에서 웃기는 것은 ‘아버지 없는 아이’란 놀림을 피할 수단이다. 동네 사람들의 환호는 부모의 관심을 대신한다.
개그는 놀림을 피하고 생존에 필요한 사랑을 어린 아이 혼자서 획득한 수단이었다. 누군가에 대한 기대가 없다. 스스로 개척한다. 김미화식 개그의 두 번째 특징이다.
1986년 쓰리랑 부부로 인기를 얻을 때다. 하루에도 야간업소 일을 몇 차례씩 할 때였다. 임신 6개월에 과로로 첫아기를 잃는 아픔을 겪는다. 심한 우울을 경험한다. 생명에 미안하고 돈의 노예가 되지 말기로 결심한다.
장애인 공동체와 같은 사회복지 행사에서 요청하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수락한다. 현재 사회복지학과 2학년에 다니고 있고 사회복지재단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어려웠기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사랑과 생존과 관련이 있다. 나이나 인기와 상관없이 영원한 애정과 관심이 약속된다. 이처럼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래서 짜증이 나지 않는다. 김미화 식 개그의 마지막 특징이다. 삶의 맛을 알고 정서적인 성숙도가 높은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약력
▲1964년 서울생
▲1983년 MBC신인개그맨으로 데뷔
▲1986년 KBS ‘쓰리랑부부’
▲1989년 KBS ‘밤이면 밤마다’(한국백상예술대상 코미디연기상 수상)
▲1991년 SBS ‘삼순이블루스’(한국방송대상 여자코미디언상 수상)
▲1999년 KBS ‘개그콘서트’
▲2001년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부 입학
▲현재 ‘개그콘서트’ 출연중, KBS 2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황인용ㆍ김미화입니다’진행, SBS ‘토요일이온다’ 진행
■ 지인들이 본 김미화
연예계의 마당발이자 맏형으로 통하는 ㈜도레미미디어의 박남성 대표는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김미화를 평한다.
결혼준비금 500만 원을 계기로 맺어진 이들의 끈끈한 우정은 연예계에서 김미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회자된다.
김미화는 결혼 당시 수중에 가진 돈이 거의 없었다. 그는 김형곤 등 선배 개그맨들을 통해 얼굴 정도나 알고 지내던 박 대표를 찾아갔고, 박 대표는 당시로서는 거액이었던 500만 원을 조건 없이 선뜻 빌려 주었다.
“물론 그때에는 저도 그런 돈을 쾌척할 정도로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김미화는 체구도 작고, 인기도 볼품도 없는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이상하게 끌리는 느낌이 있더군요”
이후 김미화는 도레미레코드 소속 연예인이 되었고 1986년 ‘쓰리랑 부부’가 대히트를 치면서 CF나 야간업소 출연료 등의 수입도 엄청나게 늘었다.
흔히 이렇게 ‘처지’가 달라지게 되면 십중팔구 수익분배를 두고 소속사와 마찰을 빚기 마련이지만 김미화는 예외였다. “돈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정해진 기준 이상의 무리한 요구는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돈을 만지면 정작 일에는 마음이 떠나는 연예인들과도 대조적이었다. “‘저 사람은 오래 가겠구나’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죠. 직접 시장에서 소품 구해서 만들고, 정말 끝까지 열심이었어요. ”
어른들에게 극진하고, 따뜻하며 겸손하다. 지금까지도 육아 TV개설 등 사업문제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속을 터놓고 의논한다.
박 대표와 인연을 맺은 수많은 연예인 중 지금까지도 가족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극소수의 사람이다.
물론 윗사람에게만 그렇지는 않다. “사실 연예인들이 사장보다는 직접 일을 봐주는 매니저들한테 좀 잘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큽니다.
흔히들 그렇지 않다는 얘기지요. 김미화씨는 회사를 떠나고도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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