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바이어(buyer)를 ‘유통업의 꽃’이라 부른다. 해당 품목의 구매에서부터 입점, 판매까지를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통업에 진출하는 신입 사원들의 소망을 물으면 한결같이 “바이어”라고 답한다.하지만 그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보는 농촌이 마냥 아름다워 보이듯 외형적인 모습에만 현혹된 탓”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발이 부르트게 뛰어다녀야 하고 뒤따르는 책임도 막중하다는 얘기다. 그래도 자부심은 넘쳐 난다.
“탁월한 바이어 한 명이 회사 수익을 최소 20% 이상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롯데백화점 식품매입팀 농산물 바이어 이병수(李秉壽ㆍ39) 과장과 함께 ‘바이어의 세계’를 살짝 들여다본다.
새벽 4시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어시스턴트 바이어’로 불리는 신참 직원들과 함께 과일, 채소, 곡물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다.
서울 등 수도권 점포에 공급할 물량만 하루 평균 5억원어치 가량. 자칫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흠집이 많은 상품을 사들였다가는 그야말로 낭패다.
“하루 하루의 승부가 새벽에 가려지는 셈”이다. 2~3시간 가량의 ‘새벽일’이 끝나면 오전 10시께부터 반나절 내내 회의가 이어진다. 백화점에서 마련하는 기획행사나 이벤트는 대부분 이 회의에서 만들어진다.
오후 일과의 대부분은 점포 순회. 본점을 비롯한 각 점포의 식품 매장은 물론 경쟁업체를 찾아 다니며 시장 조사를 하고 협력업체 상담도 줄을 잇는다.
이것 뿐만 아니다. 월 2~3회 정도는 산지 직매를 위해 지방 곳곳을 돌아다녀야 한다. “산지에서 사과를 구매하려면 현지에 꽃이 필 때부터 가봐야 돼요. 거름은 제대로 주는지, 기후는 이상 없는지 등을 매번 확인해야 하죠.”
1989년 입사 이후 거의 줄곧 농산물 매입 업무를 맡아와 업계에서는 손꼽히는 베테랑으로 꼽히지만 낭패를 본 경험도 적지 않다.
“농산물은 기후 변화에 크게 좌우되잖아요. 태풍이나 장마 등을 제대로 예측해 물품을 구매할 때는 대박을 터뜨리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성수기에 상품이 없어서 못 팔 때는 입이 바짝바짝 말라 들어간다.
그가 경험한 우리나라 유통 구조는 아직도 한참 후진적이다. 그는 “주먹구구식 유통 구조는 결국 생산자, 판매자, 소비자 모두에게 손해를 주게된다”며 “생산에서부터 판매까지 유통과정의 시스템화가 하루 빨리 정착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적어도 바이어가 되고 싶어하는 후배들은 보다 안정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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