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이런 영어 학습지 광고가 있었다. 한 엄마가 나와 “영어만 잘하면 무슨 걱정이 있겠어요”라고 말한다.아무리 광고라지만 영어만 잘하면 무슨 걱정이 있겠냐니, 그 단순함에 놀란 적이 있는데 조기 유학을 생각하는 부모 중엔 이런 사람들이 실제로 있는 것 같다.
친지중 한 사람이 초등학교 5학년짜리 딸아이를 미국으로 보내고 싶다며 의논을 해 왔다.
왜 그렇게 빨리 보내고 싶어하느냐고 묻자, 중학교 때 보내면 영어를 미국사람처럼 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왜 영어를 미국사람처럼 해야 하느냐고 묻자 대답을 못한다.
미국서 초등학교 6학년과 중1, 2년을 보낸 큰 애를 3년 전 귀국할 때 함께 데려왔더니 왜 놓고 오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냥 거기서 학업을 이어가게 하면 좋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 애를 데리고 온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우선 엄청난 사립학교 학비를 몇 년씩 댈 형편이 못 되었기도 했지만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인의 경쟁력은 역시 한국어에 있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 회사가 영어 잘하는 자기네 사람 놓아두고 한국인을 고용할 때는 그가 한국어 및 한국문화에 정통하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한국인을 고용할 필요가 없다.
미국의 어느 큰 병원에 돈 많은 한국인 할머니가 입원했는데 영어를 전혀 못하는 할머니를 위해 한국교포 의사를 특별 배치했다.
그런데 그 의사의 한국어는 엄마 밥 줘, 이거 뭐야, 거의 유치원생 수준이었다.
당연히 할머니의 복잡한 요구사항은 전달되지 않았고, 병원으로부터 눈총을 받은 그 의사는 이렇게 말하며 울었다고 한다.
“우리 엄마가 나 한국말 잘한다고 했단 말이야.…”
미국 동포로부터 직접 들은 이 이야기는 한국어 능력을 둘러싼 이들의 고민을 잘 말해준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 하버드대를 나와도 미국 주류사회에 합류하기는 너무 힘들고, 한국인들을 상대로 사업하려니 한국말이 딸리고…
한국에 돌아와 중3이 된 큰 애는 한동안 선생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어 애를 먹었다. 한자어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고급 한국어가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시절에 거의 완성되는 것을 생각하면 그 애의 반 토막 한국어 실력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사회를 온통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는 최규선 스캔들을 보며 엉뚱하게 그가 초등학교 때 한국을 떠난 조기유학 출신이라면 저런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한국어보다 더 잘한다는 영어’ 못지않게 ‘영어만큼 잘하는 한국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 이덕규ㆍ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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