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5월9일 시인 한용운이 65세로 작고했다.한용운은 충남 홍성 출신이다. 호는 만해(萬海 또는 卍海). 만해는 ‘님의 침묵’(1926)의 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조선불교유신론’(1913)을 쓴 개혁적 승려로서, 또 갑오농민전쟁과 3ㆍ1운동에 참가한 민족운동가로서 20세기 한국사에 짙은 흔적을 남겼다.
그는 광적인 뇌동으로 소란스러웠던 일제 말기의 굴종적 분위기를 거스르며 끝까지 훼절하지 않은 드문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54세에 만난 동향의 반려에게서 얻은 딸 영숙(英淑) 외에, 본부인 소생의 아들 보국(保國)이 6ㆍ25전란 중에 월북해 낳은 자녀들이 생존해 있다는 것이 올해 초 알려져 화제가 된 바 있다.
시집 ‘님의 침묵’에는 표제시를 비롯해 ‘알 수 없어요’ ‘비밀’ 등 만해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대표적 작품들이 수록됐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하는 표제시 ‘님의 침묵’에서 ‘님’은 뒷날의 평론가들이 시도한 숱한 해석들의 지평을 가볍게 초월하는 의미의 풍요로움을 갖추고 있었다.
‘님’이라는 말을 겹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그 의미의 덤불은 잠언적 울림으로 팽팽한 시집 서문 ‘군말’에서 이미 예약돼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만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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