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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8)소설가 한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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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8)소설가 한수산

입력
2002.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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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은 여주의 효종대왕능에는 봄이 흐드러져 있었다.작년에도 몇 번을 찾아갔었으나, 그때마다 보수공사 관계로 입장객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새롭게 단장을 끝낸 탓인지, 왕능의 신록은 한결 더 싱그러워 보였다.

이제 쓰려고 하는 작품의 하나에 효종대왕의 이야기가 있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잊지 않고 1649년 즉위한 후, 은밀히 북벌계획을 수립하였다.

8년여 중국에 볼모로 잡혀가 치욕을 겪어야 했던 그다. 그리고 돌아와서 북벌계획이라는 웅대한 꿈을 펼치다가 겨우 10년의 재위 기간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요즈음 나는 몇 개의 공간에 대한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마치 주술에 걸린 듯이.

10여년 전 타이페이에 있는 고궁박물관에 몇 번 들른 적이 있었다. 장개석이 모택동에게 밀리면서 타이완으로 피해올 때 본토에서 가지고 온 보물들이 진열된 박물관이다. 거기에서 극세공의 조각 작품들을 보았던 기억을 나는 충격 속에 간직하고 있다.

손가락만한 작은 상아 조각은 그냥 보아서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확대경을 통해 들여다보고서야 비로소 그것이 뱃놀이 모습을 새긴 것임을 알았다.

새끼손가락 크기의 상아를 깎고 깎아서 배를 만들었는데, 배 위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의 술병과 술잔까지 파놓고 있었다.

허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극한의 허무, 무엇을 위해서라는 전제가 전연 사라진 허무 그것이 거기에 있었다.

한숨을 쉬면서 확대경으로 그 보물, 그 허무를 바라보았다. 무엇을 위해서 그런 조각이 필요했는지.

▼몇개의 공간에 대한 기억▼

일관된 집념이 거기에는 있었다. 그러나 그 행위에는 어떤 목적도 없었다. 목적성이 없는 허무였다. 왜 무엇을 위해서 그 뼈를 파고 깎고 한 것일까.

조그마한 상아에 대(代)를 물려가면서 배를 새겼던 사람들을 그때 나는 무엇으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어떻게 이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삶의 기술’을 종교라고 한다면, 그들의 삶에서 그런 믿음을 보았다.

나를 위해, 무엇을 위해… 라는 그 단순하고 명확한 명제가 빠져나간 ‘다만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삶’이라는 무위의 한 평생이 거기에는 있었다.

나는 내 문학도 그러하기를 얼마나 기도했던가.

전장에서 피 흘리며 죽어 가는 쓰러진 병사의 군화 옆에 개미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개미로서는 상상도 안 될 그 거대한 가죽 덩어리. 개미가 그것이 죽어 가는 병사의 발을 감싼 신발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이 말은,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이 쓴 ‘적과 흑’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개미가 병사의 군화가 무엇인지 알 수 없듯이, 여름날 하룻밤을 사는 하루살이가 어떻게 계절의 변화를 알 것인가.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그 장렬한 생애를 마치고 떠나는 자리에서, “그토록 기다렸으나 이렇게도 늦게 찾아온 죽음”이라고 자신의 죽음을 노래했다.

딸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한동안 열심히 아이를 데리고 음악회엘 다닌 적이 있었다. 듣고 싶은 곡이 아니라 연주가를 찾아다닌 음악회였다.

그때 딸아이와 함께 들었던 연주회에는 아이작 스턴이 있었고, 로스트로포비치가 있었고, 중년의 온화함으로 성숙한 안네 소피 무터가 있었다.

어린 딸이 아비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렸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때 아이에게 노인의 아름다움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것이야말로 이제 자신의 삶을 경영해 갈 그 아이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동기를 마련해 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평생을 음악에 몸 바친 노대가의 모습을 알게 함으로써, 아 저런 삶도 있구나 하고 아이가 눈뜨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더한 가르침이 어디에 있을 수 있으랴 하는 생각에서였다.

▼시베리아서 비우는 삶 배워▼

97년이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까지 열흘을 달린 적이 있었다.

기차에서 자고, 기차에서 먹고, 기차에서 흔들려야 했던 그 여행이 끝났을 때는 며칠을 땅이 기우뚱거리는 것 같았다. 문명에서 원시로, 도시에서 황무지로 가는 기나긴 여로였다.

하루 종일 달려도 창 밖의 풍경이 변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대륙이라는 그 넓이를 실감하기보다 먼저 두려움에 가까운 대지의 장엄함이 거기에는 있었다.

금빛으로 물든 자작나무가 하루 종일 차창 밖을 지나가기도 했다. 어두운 잿빛으로 뒤덮인 구릉지대가 참혹한 모습으로 차창을 메운 채 한나절을 지나가기도 했다.

그 공간과의 만남은 나에게 소리 없이 말해 주었었다. 더 무엇을 찾아 헤매고 더 무엇을 가지려 하지 말라고.

그렇게 나를 비우도록 한 공간이 있는가 하면 나를 채우게 했던 공간도 있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가 그랬다.

비 내리는 거리를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헤매던 바르셀로나의 하루. 행복에 겨워서 우산을 받지 않고 빗속을 걸었었다. 이제 돌아가면 더 치열하게 살리라. 내 몸의 비늘 하나하나를 떼어내듯 그렇게 시간을 아끼리라 생각했었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을, 이렇게 한적하고 고요하고 우아한 거리를 거닐 수도 있는 것을.

그러나 서울로 돌아온 나는 아무 것도 변하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이 닦고, 머리 감고, 전화를 걸고, 약속을 하며… 철 지난 낡은 양복처럼 살고 있었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못했다. 시베리아 벌판에는, 그 마른 초원에서 허리에 손을 얹고 우뚝 서서 내가 탄 열차를 바라보던 사내가 있었다.

벌판에는 오직 그 남자 하나였다. 저 드넓은 초원에서 경영하는 그의 삶, 그것은 얼마나 찬란하던가. 느릿느릿 그의 생애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 않던가.

그 변하지 못하는 나에게, 불에 타들어 가듯 묻는다.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무엇으로 느끼는가. 끊임없는 교통체증에 화를 내면서, 저녁 약속에 늦지 않으려고 계단을 뛰어오르면서, 작은 자존심 하나를 지키기 위해 무참하게 구겨버린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아직도 버리지 못한 채 늘 부대끼며 살아가는 경쟁심, 그런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끼는가.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잠들 때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하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을 때마다… 요즈음은 기도하고 있다.

좀 더 작은 것에서 눈부신 발견을 하면서 가자고. 그렇게 느리게 가자고. 여유와 진정함, 내 삶을 꾸며 줄 그 두 날개를, 주여, 잃지 않게 하소서.

요즈음에 와서야 안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아야 코스모스 꽃잎이 흔들림을 볼 수 있듯이, 개미는 쪼그리고 앉아야 보인다.

달려가는 사람에게 땅 위를 기어가고 있는 저 작은 개미가 보일 까닭이 없다. 개미를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나는 얼마나 모르고 살았는가. 여유도 진정함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개미를 바라볼수 있는 지혜▼

조금 천천히, 조금 느리게, 그렇게 해서 찾아지는 여유로 좀 더 단순해지자. 내 삶에서 진실로 빛나는 것이, 잃어버리고 있는 소중한 것이 보이지 않는가.

달리고 달리면서 개미 따위가 아니라 사자와 코끼리같이 크고 엄청난 것만을 찾아왔다면 그 한평생이 얼마나 많은 것을 지나쳐 버리게 하는지를 왜 나는 이제야 깨닫는 것일까.

문학은 내 삶의 한 양식이었다.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의례(儀禮)였다. 이제 남아 있는 시간에 기대어 그렇게 담담히 가야할 길을 바라본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일그러진 역사를 복원하기 위한 작업이 아직도 나에게는 남아 있다.

그것이 복원이라면 남한산성에서 효종대왕능까지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역사에 대한 증언이 될 것이다.

분단 조국에서 태어나 살아오면서 한 지식인으로서 한 치도 비켜설 수 없었던 척(斥)과 화(和)의 문제 그리고 조국이란 무엇이었나를 거기에서 묻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작업으로 역사에 대한 탐구가 남는다. 천주교 박해사를 통해 고결한 영혼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려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란 무엇인가에 가 닿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연보

▦1946년 강원 인제 출생

▦196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 ‘해빙기의 아침’ 당선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4월의 끝’ 당선

▦1973년 경희대 영문과 졸업ㆍ한국일보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해빙기의 아침’ 가작 입선

▦1997년~현재 세종대 국문과 교수

▦단편집 ‘모래 위의 집’ ‘말탄 자는 지나가다’ ‘4백년의 약속’ 장편소설 ‘부초’ ‘밤의 찬가’ ‘유민’ ‘욕망의 거리’ ‘모든 것에 이별을’ ‘사랑의 이름으로’ ‘먼 그날 같은 오늘’ ‘엘리아의 돌계단’ ‘마지막 찻잔’ 등

▦오늘의작가상(1977) 녹원문화상(1984) 현대문학상(1991)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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