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베를린 필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1999년에 21세기를 이끌 다섯 명의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진은숙(41)을 꼽았다.독일에서 활동 중인 그는 작품을 위촉받은 것만으로도 2006년까지 일정이 잡혀있다.
그가 2002 아시아현대음악제 초청으로 서울에 왔다. 독일인 남편과 15개월 된 첫 아기를 동행했다.
이번 음악제의 폐막연주회(9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에서 그의 바이올린협주곡이 서울시향과 한국계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비비안 하그너에 의해 아시아 초연된다.
도이체 심포니가 위촉해서 1월 베를린에서 세계 초연한 작품이다.
“4악장으로 된 연주시간 25분의 작품입니다. 바이올린 솔로와 2관 편성에 타악기가 많이(7~8명) 포함된 곡이지요. 타악기군에는 자메이카 스틸 드럼이 들어있는데, 클래식음악에서 쓰인 적이 없는 악기예요. 한국에 하나 밖에 없어 구하느라 고생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지난해 7월 도이체 심포니 초빙작곡가로 선임됐다. 베를린 필과 함께 베를린을 대표하는 교향악단이다.
이에 따라 도이체 심포니는 1년간 그의 작품을 집중 소개하고 있다.
바이올린협주곡에 앞서 지난해 남성 중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을 연주했고, 6월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한다. 도이체 심포니 음악감독 켄트 나가노가 그를 지원하고 있다.
10월에는 래틀이 직접 만든 앙상블을 지휘해 그의 ‘소프라노를 위한 말의 유희’를 런던과 버밍엄에서 두 번 연주할 예정이다.
로스앤젤레스 오페라(음악감독 플라시도 도밍고)는 2004/2005 시즌에 그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초연할 예정이며 그의 작품집 음반도 거장 피에르 불레즈가 이끄는 앙상블 엥테르 콩탕포렝의 연주로 내년 파리에서 나온다.
그의 작품은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말러 ‘대지의 노래’ 등 고전ㆍ낭만음악과 나란히 연주되고 있다. 현대음악에 대한 특별 배려를 벗어나 정규 레퍼토리로 진입하고 있다는 증거다.
“현대음악만 따로 모아 연주하는 ‘현대음악 수용소’는 싫어요. 거장의 작품과 나란히 연주된다는 건 매우 부담스런 일이지만, 그래야 좀더 냉정한 자기비판이 가능하지요.”
현대음악은 어렵다는 인식에 대해 그는 “작곡가 책임이 크다”고 했다.
“어려운 건 사실이예요. 걸러지지 않은 게 많고, 이해하려면 사전지식도 많이 필요하니까. 저도 전에는 그런 작품을 썼지만, 지금은 현대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추구하지요. 이번 바이올린협주곡도 귀에 괴롭거나 지겹고 파괴적인 음악이 아닙니다.”
명성과 상관없이 그는 ‘작곡가는 불행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연주자나 청중과 달리 작곡가는 음악을 즐기는 단순한 기쁨을 누릴 수 없어요. 책상에 앉아 머리 속의 음악을 종이에 옮기노라면 머리칼과 피부가 갈라질만큼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래서 음악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을 잃지 않으려고 죽어라고 피아노를 칩니다. 쇼팽 연습곡도 치고 슈만 환상곡도 치고.”
나이 마흔에 낳은 첫 아기는 그런 그에게 견딜 힘을 준다. 엄마가 되고 나니 인생이 달라 보인다고 했다. 그는 23일까지 머물다 독일로 돌아간다.
■진은숙은 누구
서울에서 나고 자라 서울대 음대를 나와 1986년 독일로 갔다. 함부르크 음대에서 현대음악 거장 죄르지 리게티를 사사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인 1985년 유명한 가우데아무스 국제 작곡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1993년 도쿄 작곡 콩쿠르 작품상, 99년 부르주 국제 전자음악 작곡 콩쿠르에서 1등을 했다.
주요작품으로는 전자음악 ‘영원에의 길’ ‘말의 유희’ ‘그늘의 숨결’, 대편성 관현악곡 ‘상티카 에카탈라’ ‘기계적 환상곡’, 앙상블과 전자음악 ‘씨’(Xi)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세계 굴지의 음악출판사 부지 앤 혹스에서 독점 출판되고 있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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